[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정부가 400조7000억원 규모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2017년도 예산안 중 상당수가 유사·중복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이 ‘현미경 심사’를 벼르는 상황에서 일부사업의 예산이 삭감되거나 타 사업에 통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5일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의 ‘예산안분석시리즈 - 거시·총량분석’ 자료에 따르면 14개 부처의 25개 사업이 유사·중복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정처는 2개 이상 사업의 목적과 내용, 대상이 유사하거나 중복 추진되는 사업을 유사·중복사업으로 분석했다.
부처별로는 법무부와 행정자치부의 유사·중속사업 수가 각각 3건으로 가장 많았다.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인사혁신처, 보건복지부 등의 유사·중복사업은 2건, 문화체육관광부와 해양수산부 등은 1건이었다.
이 중 법무부가 477억원 규모로 편성해 제출한 ‘법률구조사업’은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 보조금을 지원해 취약계층 대상 법률상담·소송진행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서민법률보호를 위한 홈닥터사업’(42억원), 마을변호사제도 운영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제도의 선진화사업’(1.4억원)에서도 무료법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취약계층에 대해 무료법률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으로 사업목적과 내용, 대상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예정처는 지적했다.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 개도국 도시지원사업’(5억원)은 개발도상국의 도시개발 마스터플랜 수립을 지원하고 관련 분야 공무원을 초청해 국내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는 정부 사이의 개발협력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 마스터플랜 수립을 지원하고 공무원 초청연수를 실시해 우리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를 지원하는 명목으로 편성된 ‘국제개발 협력사업지원사업’(92억원)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부처와의 유사·중복사업을 걸러내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현실 콘텐츠산업 육성사업’(192억원)은 가상현실(VR) 콘텐츠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신규 편성했다. 그런데 미래창조과학부에서도 ‘VR산업 육성사업’(77억원)을 통해 VR콘텐츠 제작을 지원키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자동차 구입비에 대한 융자를 지원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 금융지원사업’(300억원)은 마찬가지로 전기자동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환경부 ‘전기자동차 보급 및 충전인프라 구축사업’(2200억원)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정처는 문제가 되는 사업 간 연계를 강화해 효율성을 높이거나 예산낭비와 비효율성이 우려되는 사업은 통폐합하는 등의 개선책을 제시했다. 행정자치부가 제출한 ‘전자정부 해외진출 지원사업’(10억원)은 기존 공적개발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전자정부분야 국제기구 교류협력사업’ 등과 연계해 추진하고, 국토부의 ‘성장촉진지역개발사업’(2091억원) 중 산업단지 진입도로를 건설하는 2개 사업은 이미 ‘산업단지 진입도로 지원사업’이 있는 만큼 통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제출하는 과정에서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위해 205개의 유사·중복사업을 통폐합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부사업의 유사·중복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다수 제기됐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관련사업과 중소기업청 창업지원사업의 중복 예산투입 문제를 지적한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사업의 예산 낭비 가능성을 국회에서 심도있게 논의해 내년도 예산배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날 김유찬 홍익대 교수,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내년 예산안에 대한 재정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미방위와 안전행정위원회 등도 전체회의를 열고 소관부처 예산안 심사를 진행했다.
25일 국회 예결위의 ‘201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재정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