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에 있으면서 온갖 사건·사고를 접하지만, 몇 년 전부터 버릇처럼 되냈던 말이 있다. “다시는 배를 타다가 죽는 사람이 없기를.”
맞다. 2014년 아직도 충격이 사라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생긴 버릇이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동창여행을 가던 섬마을 사람들, 그들을 구하려다 의롭게 죽은 승무원들의 얘기까지. 아무리 사람 사는 곳에 사건·사고를 떼어놓을 수 없다지만, 하나하나 쉽게 잊을 수 없는 희생자들의 얘기들과 지금도 힘겹게 밝혀지고 있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며 나한테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비슷하지만 다른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시는 스크린도어 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기를.”
세월호 참사만큼 대형사고는 아니어도 2013년 성수역 사고부터 2014년 독산역, 총신대입구역, 지난해 강남역, 올해 서울역, 구의역, 김포공항역까지 연이은 스크린도어 비극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발생한 구의역 사고도 사망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하청업체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관리 소홀, 비정규직에 하중되는 과도한 노동구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당시 김씨가 사망한 구의역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찾아 추모 메시지가 남긴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꽃을 놔두고, 어떤 이들은 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사망자를 기리는 음식을 놓고 가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어느 출근길 아침, 우리에게 알려진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발생’이라는 글자는 자연스럽게 구의역 사고를 비롯한 앞선 사고들과 궤를 같이했다. 아직 경찰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는 출근시간에 쫓긴 사망자의 과실, 승객의 안위를 확실히 살피지 않은 지하철 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만약에 해당 전동차가 1인승무제가 아니라 2인승무제로 운영돼 승무원이 현장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또 가장 먼저 설치돼 가장 많이 고장 난다던 김포공항 스크린도어가 비상시 내부에서도 열릴 수 있거나 전동차에 상황을 제때 알려 사고를 막을 체계를 갖췄으면 혹시 막을 수 있었을까.
‘만약’만큼 부질없는 단어는 없다지만, 하루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현장을 보면서 기자는 이러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서울시는 2일 이번 김포공항역 사고에 대한 후속조치로 스크린도어 안전 보강대책을 발표했다. 김포공항역 등 전면 개보수가 필요한 9개 역사는 내년 상반기까지 스크린도어를 전면 재시공하며, 다른 역사의 핵심 부품 기능 저하와 부품 수급 문제도 속도를 높인다.
장애 종류별 표준 정비법을 담은 표준 매뉴얼을 마련하고 관리운영 매뉴얼을 재정비하며, 기관사가 비상시 현장을 확인하도록 업무내규를 개정하고, 모든 스크린도어에 공통으로 적용하는 표준 시방서도 만든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출근 시간엔 지하철안전요원도 확대 배치하고, 지하철 이용문화 확산을 위한 지하철 안전 10계명을 제정할 예정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고 하던가. 아무리 완벽한 후속대책을 내놓더라도 이번 사고는, 사망자의 생명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대로 된다면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의 기나긴 악몽은 정말 끝날까.
안전이란 것은 모든 승객에게 정상적인 행동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설사 이상행동을 보이는 승객이 있더라도 이를 구조적인 부분에서 통제하고 해당 승객과 다른 승객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일 테다. 오늘 발표된 후속대책, 아니 모자란다면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담아 더 보완해서라도 이번 사고와 같은 유형의 사고가 제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이번 사고가 마지막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되기를.”
박용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