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미 트럼프 동향 주시…“사업별 시나리오 분석”

현대차·삼성·포스코 ‘부정적’…LG·SK·롯데·한화 ‘중립’

입력 : 2016-11-10 오후 3:50:40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9월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디자인센터를 방문해 수석디자이너 톰 커언스를 비롯한 임직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뉴스토마토 이재영·김영택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숨죽이고 있는 재계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연이은 악재에 직면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트럼프 당선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다양한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국내 4대 그룹 한 관계자는 10일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시나리오를 정리해 놨다”며 “트럼프 당선에 따른 각 계열사별 비즈니스 영향을 별도로 준비해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동이나 아시아 금융시장, 유가 등 대외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그 속에서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긍정과 부정 요인을 세밀하게 분석 중”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우려가 높은 곳은 자동차 산업이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로 한미 FTA 재협상이 진행될 경우 통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총 139만여대를 판매했고, 이 중 64만대를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했다. 한미 FTA에 대한 재협상이 이뤄지면 수출분에 대한 관세가 높아질 수 있다. 특히 기아차의 경우 지난 9월 멕시코 공장을 통해 북미 지역으로 자동차를 수출할 계획이었으나, 트럼프가 멕시코산 생산품에 대해 35% 과세를 공언했기 때문에 이부분도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과세를 부과하겠다는 건데 당연히 악재이고, 당장 뚜렷한 대책을 내놓기보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LG의 주력 IT·전자제품은 미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아 집중 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세탁기 제품의 경우 현지 기업의 덤핑 제소로 인한 분쟁이 계속돼 왔다. 현재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스마트폰도 안심할 수 없다. 올 상반기 미국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6%, LG전자는 13%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한국 업체의 점유율(39%)이 애플(37%)을 초과해 보호무역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IT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되는 제품은 스마트폰"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또 일자리 창출과 자국 산업 부흥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지원을 줄이고 셰일가스 등 자국 부존자원 개발을 적극 유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국제유가에는 하방 요인으로 작용해 저유가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대두된다. 중동 등 산유국들의 재정 악화를 야기한 저유가는 수주 감소로 이어져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조선·플랜트 업계가 구조조정까지 내몰린 원인이기도 하다. 반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트럼프가 유세 과정에서 해외 의약품 수입 개방을 주장해 호재로 인식되고 있다. 
 
LG의 경우 스마트폰, 가전 외에도 신수종 사업인 배터리가 미국과 밀접하다. LG화학의 미 홀랜드 배터리 공장이 세계 전기차 시장의 고속성장세로 가동률을 회복했으나, 오바마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 수혜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현지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위축되면 LG화학이 추진하고 있는 초대형배터리(ESS)사업도 힘을 받을 수 없다.
 
SK는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미국에 수출하는 것 외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떨어진다. 미국의 원유 공급이 확대돼 간접적으로 SK이노베이션의 정유 및 화학사업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원유 시장 점유율 경쟁에 돌입해 원유 공급을 늘리며 저유가 기조가 유지 또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따라서 정유사업은 원유 도입가 하락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다. 화학사업도 원유 납사 가격 약세로 인해 생산설비(NCC)의 수익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현재 고점인 미국 정유설비 가동률 및 추후 건설 계획이 없다는 점을 들어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마찬가지로 롯데그룹도 NCC사업을 영위하는 롯데케미칼의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더욱이 롯데케미칼은 미국 루이지에나주 레이크찰스 지역에 셰일가스 기반 석유화학단지도 짓고 있다. 관세 장벽이 커질 경우 현지생산 거점을 확보한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저유가로 인해 가스기반 화학시설의 수익성이 악화된 만큼 신규 투자 효과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현지 화석연료 생산이 늘어나면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높아진다.
 
한화는 한화케미칼이 화학사업에서 저유가의 수혜가 예상되나, 태양광 폴리실리콘 사업과 한화큐셀의 모듈·발전소 등이 복합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이 악재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가 태양광이다. 미국의 태양광 시장은 중국이나 여타 신흥시장에 비해 수익성이 높다. 이에 OCI나 한화 등이 적극적으로 현지 시장에 진출해왔다. 한화는 태양광 발전소와 주택용 태양광 시장에 대한 모듈 공급 등 성과도 컸던 만큼 시장이 축소되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의 저가 제품을 집중 제재해 왔기 때문에 중국산이 위축될 경우 국내 제품은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국방비 감소로 국내 방산업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화테크윈 등 방산업체들의 주가가 강세를 띠는 이유다.  
 
포스코의 철강업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국내 철강산업의 미국 수출량은 13%에 불과하지만 상대적으로 마진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최근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철강업계는 자국의 철강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의 과격한 보호주의가 더해져 당장 한국 철강제품 수입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등이 진행될 수 있다. 지난해 7건, 올해만 4건의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실시한 미국은 한국산 열연·냉연 강판 등에 최대 60%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까지 대미 철강 수출은 금액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가량 감소한 바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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