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는 외모가 아니라 실력으로 하는 것

입력 : 2016-11-21 오전 11:05:08
일명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미궁에 빠진지 어언 한 달 째로 접어든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쏟아진 각종 의혹들은 20일 검찰의 발표로 거의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지난주 <JTBC>가 박 대통령이 연간 1억 원이 넘는 진료비를 내야하는 차움병원에서 ‘길라임’이란 이름으로 치료를 받았고 대리처방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돼 적지 않은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의하면 2014년 4월16일 온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침몰 당시에도 대통령은 미용을 위해 불법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박 대통령의 행동을 보면서 여성으로서 적지 않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많은 유권자들은 이 슬로건에 공감했고 그녀를 준비된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을 준비했던 것인가. 리더십을 배양하고 정책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화면에 잘 나오는 ‘뽀얀 피부’를 갖기 위해 마사지를 받고 주사약을 처방받는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닌가. 한 나라의 대통령은 윤기나는 얼굴로 보좌진들이 펴주는 파일 위에 사인만 멋들어지게 하면 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렇게 국정을 안이하게 여기는 여성이 한때는 ‘준비된 여성’을 팔더니, 이제는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강조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미국·프랑스보다 먼저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한국이었음을 들어 의기양양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테지만 솔직히 우리에게 여성 지도자는 시기상조였는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은 보수적인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정치인은 여성이다. 그 주인공은 시몬느 베이(Simone Veil). 1998년부터 매년 8월 주르날 뒤 디망슈(journal du dimanche·일요신문)는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인물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올해 선정된 인물 1위는 "앵뚜샤블(Intouchables)"로 일약 스타가 된 흑인배우 오마르 씨(Omar Sy)이고, 2위는 “꼼므 뚜아(Comme toi)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 자크 골드만(Jean-Jacques Goldman)이다. 그리고 3위는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베이가 차지했다. 그렇다면 베이 여사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지스카르 데스탱 정부에서 보건부 장관을 지내면서 프랑스 여성들의 인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인물이다. 70년대 초반 프랑스 정부가 질질 끌던 임신중절 문제를 과감히 합법화하는 베이 법(Loi Veil)을 만듦으로써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의 틀을 깨고 여성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녀의 인생역정 또한 프랑스인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열일곱 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아비규환의 현장을 경험했고, 가까스로 생존해 고국으로 돌아온 후 파리정치대학에서 법과 정치학을 공부하여 사법관이 되었다. 정치계에 입문한 것은 그녀의 나이 42세 되던 1969년의 일이었다. 그 후 1974~1979년까지 지스카르 데스탱 정부에서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에는 유럽의회 최초의 여성 의장이 되어 유럽연합 건설에 고군분투했다. 1995년 발라뒤르 정부에서도 사회문제·보건·도시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눈부신 활약을 했고, 뒤이어 헌법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그녀의 인생역정은 프랑스 현대정치사 그 자체였다. 프랑스인들은 베이 여사의 보기 드문 윤리적·철학적 삶을 높이 기리고 그들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이처럼 베이 여사가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탄생한 것은 그녀가 윤리와 철학의 문제에 입각해 국민의 편에 서서 멋진 정치를 구현해 왔기 때문이지 결코 화려한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어떠했나. 그녀의 윤리적 도덕적 관념은 무엇이고 국정 철학은 또 무엇이었던가.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한 고뇌와 노력은커녕 여성성만을 부각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으니 이보다 더 통탄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대한민국 1호 여성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역사에 길이 남기 위해 밤잠 안자고 분발할 줄 알았건만 이는 한낮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다른 여성 정치인들은 제발 여성성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수를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정운영은 결코 외모로 커버할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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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