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식이 2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엄수됐다. 강한 바람이 부는 초겨울 날씨에도 많은 이들이 YS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최근 뒤숭숭한 정국의 탓인지 민주주의자 YS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대통령 YS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군부내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하고 역사바로세우기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워 군부독재 잔재를 쓸어냈다. 또 금융실명제와 지방자치제를 단행한 점도 평가받는다. 다만 임기 말 각종 부패와 IMF외환위기라는 오점을 남겼다. 임기초반 개혁행보에 90%를 넘겼던 지지율도 임기말년 6%까지 떨어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5% 지지율을 기록해 역대 대통령 지지율 최저치를 경신했다.)
민주주의자 YS에 대한 평가는 높은 편이다. 지금의 새누리당을 탄생시킨 ‘3당 합당’의 주역이라는 점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에 이 땅의 민주화 세력을 이끌었고 스스로 온몸을 던져 저항한 민주투사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최근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의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시켰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논란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다. 국민은 자신들의 권력을 5년간 박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선출되지 않은 이, 비선실세 최순실과 그 일당에 의존해 국정을 운영했다. 단순히 의존을 넘어 그들 혹은 본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전횡한 의혹도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그러나 국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권력을 도둑맞았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분노를 넘어 국민들을 절망케 하는 것은 사건 발각 후 박 대통령과 소위 집권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보여주는 대응방식이다. 초반 반성하는 척 악어의 눈물을 흘렸던 이들이 변명을 늘어놓다가 이제와선 “법대로 해라”라고 버티기에 나섰다.
이미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도 없고 국민 신뢰 회복의 길도 보이지 않지만 버티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세력이 무력을 통해 국민들을 억압했다면, 지금의 집권세력은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있다. 이런 정권의 임기가 1년 넘게 남았다는 점이 국민의 분노와 절망감을 더욱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영원한 민주투사 YS는 우리에게 어떤 길을 알려주고 있을까. YS는 묘비를 통해 우리에게 답한다. 묘비에는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오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라는 어록과,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단어 ‘민주주의(民主主義)’와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적혀있다.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린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이 이긴다. 국민의 명령을 이기는 위정자는 없다. 국민들이 원하는 민주주의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문은 없다. 현재의 정치권과 우리들이 새겨들어야할 이야기다. 수많은 촛불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