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 편견과 달리 불쌍하지 않아요. 제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이 무대에 섰습니다."
연극무대에 선 미혼모 A씨의 말이다. 연극 '미모되니깐'은 미혼모들이 직접 출연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미혼모들이 직접 겪은 낙태와 입양의 고비와 양육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지난해 시즌1을 시작으로 올해 시즌2가 공연됐고, 지금까지 미혼모 11명이 참여해 생생한 그들의 일상을 연기했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지금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그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명랑캠페인'의 역할이 컸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미혼모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만들고 무대에까지 올렸다. 명랑캠페인은 문화예술로 미혼모,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자 탄생한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문화예술로 변화되는 사람들을 보며 큰 기쁨을 얻는다는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를 만났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명랑캠페인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오호진 대표는 지난 15년간 문화예술 분야에서 공연과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는 "내가 직접 제작에 참여했던 영화나 공연을 보고 사람들이 변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며 "전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부에 동참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콘텐츠를 내놨습니다. 첫 공연은 가수 션과 함께하는 '만원의 기적 콘서트'였죠. 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보고 '공연으로 전파되는 힘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3년에 진행된 '만원의 기적 콘서트'는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기부 공연으로 마련됐다. 명랑캠페인이 마련한 첫 작품이었다.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사진/명랑캠페인
연극으로 세상에 말하다…미혼보 관련 법안 개정도 추진
자신감을 얻은 오 대표는 한 발 더 내딛었다. 일회성 이벤트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뛰어들었다. 첫 대상은 미혼모였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했고, 40여명이 명랑캠페인이 마련한 미혼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정해진 교육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주기적으로 만남이 지속되다보니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과정에서 미혼모들의 일상생활, 고충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진솔했습니다. 감동은 언제나 진솔에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묶어 연극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혼모와의 소통이 낳은 결과물은 '연극'이었다. 연극 '미모되니깐'은 미혼모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해 꾸민다. 미혼모들은 연극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말들을 무대에서 풀어냈다. 오 대표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당사자가 주인공이 됐을 때 변화되는 것이 많았다"며 "미혼모들이 세상에 떳떳하게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고, 자신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미모되니깐'은 정책과 법안 개정을 위한 '입법연극'으로 새로 태어났다. 사회적 편견의 어려움을 겪는 미혼모들의 문제를, 이해하기 쉬운 연극으로 제작해 문제점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현재 '한부모가족법'과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부모가족법은 1989년에 시행된 후에 지금껏 법안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개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국내는 양육비 지원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양육비지원법의 개정 역시 시급한 게 현실이다.
오 대표는 "그동안 미혼모들이 모임을 통해 법안을 검토하고, 수정할 부분들에 대해 토론해왔다"며 "이를 통해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명랑캠페인은 '우리 이웃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혼모를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청소년, 시니어 등으로 대상도 확대해 나갔다.
명랑캠페인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오 대표는 장애청소년을 대상으로 8개월간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엄마들이 아이에게서 해방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정작 변화는 아이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엄마들과 떨어져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자발성을 띠게 된 거죠. 마지막 날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그동안 아이들을 보호하려고만 했던 행동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눈물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이달 초에는 50+세대(50~64세)를 대상으로 공감영화제를 개최했다. 공감영화제는 올해 4회째로 명랑캠페인이 매년 진행하는 행사다. 올해에는 시니어들이 참가해 기획부터 영화제 진행까지 맡았다. 영화 상영 중간에 공예, 편지쓰기 등의 프로그램들도 시니어들이 직접 기획했다. 오 대표는 "지금까지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아이의 엄마로만 생활해왔던 시니어들이 프로그래머라는 타이틀을 달고 영화제를 이끈다는 것에 만족해했다"며 "영화제가 진행되는 3일간 5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도 많았다"고 말했다. 명랑캠페인은 매년 공감영화제를 통한 수익 전액을 기부하고 있다.
'헬프' 공연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명랑캠페인
'생각의 변화'로 '사회의 변화'를 꿈꾸다
명랑캠페인은 콘텐츠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다. 기관, 학교, 기업 등에서 특정 콘텐츠를 요청하면 찾아가 공연하는 방식이다. 대표작인 '미모되니깐'의 경우 올해에만 10회를 진행했다. 콘텐츠가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명랑캠페인은 꾸준히 콘텐츠를 개발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오 대표는 "기존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다"며 "인문학 프로그램 등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능력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발굴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입이 없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자신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배우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고충을 듣고 있어요."
명랑캠페인은 올해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명랑캠페인은 짧은 기간 동안 미혼모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상당부분 바꿨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2년차인 햇병아리 기업이 이룬 성과는 상당했다. 무명 배우로 시선을 옮긴 명랑캠페인이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기대된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