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연·기금은 자본시장의 큰 손으로 시장 감시자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연금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는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시장의 검은 손'이라는 오명도 더해졌다.
의결권 행사 역시 재벌 이해 대변에 맞춰졌다. 14일 CEO스코어가 국민연금의 2016년 주총 의결권 행사내역을 분석한 결과, 국민연금이 올 11월 말까지 의결권을 행사한 586개사의 654회 주총 3344건 안건 중 2994건이 찬성이었다. 찬성률 89.5%다. 반면, 반대를 표명한 안건은 320건으로 9.6%에 불과했다.
특히 국민연금은 10대 재벌그룹의 주총 안건 426건 가운데 32건(7.5%)에만 반대했다. 심지어 삼성과 현대중공업 주총에서는 단 1건도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그마나 10대 그룹 가운데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 비중이 높았던 곳은 한화로, 24건 가운데 5건(20.8%)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의사 표명 비율이 가장 높았던 안건은 수익률과 직결된 배당이었다. 총 27건의 안건에 대해 20건(74.1%)을 반대했다. 또 주주가치를 희석하거나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정관변경 282건 가운데 58건(20.6%)에 대해 반대했다. 정작 중요한 합병 및 분할, 재무제표 승인, 이익잉여금 처분 등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제로(0)였다. 수익률 외에 지배구조, 제무제표 등에는 일체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국민연금의 구조에 기인한다. 국민연금은 정부 직제상 복지부 산하기관이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복지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한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전체 20명 위원 중 위원장 포함 6명이 기재부·고용부 등 정부측 인사다. 핵심부서인 기금운용본부도 마찬가지다. 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의 추천을 받아 복지부 장관이 임면한다. 기금운용본부 자체의 인사와 예산에 대한 권한도 연금관리공단 등 외부에서 쥐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를 노리는 기재부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는 물론 관련 부처, 국회 등 정치권과 대기업의 입김에 기금이 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내부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은 합병비율로 인한 기금 손실이 막대함에도 찬성표를 던지며 외압 의혹에 휩싸였다. 앞선 SK 사례와 달리 절차 등도 생략된 채 속전속결로 의결권 향방이 결정됐다. 당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민감한 시기임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논란을 자초했다. 문제가 된 합병비율에 대한 조정 또한 없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철저한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관투자자에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의무를 부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변화와 제도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재편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민들 노후자금의 투명성이 걸린 문제다.
김혜실 기자 kimhs2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