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휴지조각' 되기 전에…재계, 지주사 전환 활발

올해만 상장사 9곳 지주사 체제 전환…삼성·현대차·롯데 '발등의 불'

입력 : 2016-12-19 오후 5:17:58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재계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움직임이 분주하다. 최근 중견그룹들이 잇따라 체제 전환을 발표했고, 삼성도 가능성을 살피는 중이다. 경제민주화 규제 법안의 국회 통과 확률이 높아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 정국 주도권을 잡은 야당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본격화할 태세다. 특히 체제 전환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자사주 신주 배정에 대한 규제 법안이 3건이나 발의돼 있다. 차기 대선 일정을 고려하면 관련 현안이 있는 재벌그룹들은 내년 상반기가 ‘골든타임’으로 여겨진다. ‘자사주의 마법’이 풀리기 전에 인적분할 시도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19일 <뉴스토마토>가 상장사 공시를 전수조사한 결과, 올 들어 최근까지 총 9개 기업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단행했다. 샘표식품, 일동제약, 크라운제과, 경동도시가스, 오리온, 현대중공업, 유비쿼스, AP시스템, 매일유업 등이다. 지난해보다 숫자가 늘어난 것은 물론, 몸집이 큰 기업들이 구조 개편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해에는 코스닥 기업 6곳만 체제 전환을 발표했는데, 올 들어서는 코스피에서도 6곳이 가세했다.
 
이들은 모두 인적분할 카드를 꺼내들었다. 분할 회사의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분할회사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가 되는 회사는 기존 자사주에 대해 자회사 신주를 배정받아 의결권이 생긴다. 자사주의 마법이다. 지배주주는 인적분할 시 지주회사에 자사주를 몰아준 다음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분 2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 공정거래법 규제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때문에 인적분할 후 자사주를 활용하고 공개매수와 현물출자 등을 거쳐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이 재계에서 일반적이다.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는 절대적인 도움이 되지만 소액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는 논란이 있다. 인적분할 후 자회사의 경우 기존 주주 외에 지주회사가 새로운 주주로 추가되기 때문이다. 즉, 자회사에 대한 지배주주의 의결권이 확대되는 반면, 기존 소액주주는 의결권이 축소돼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야권에서는 지주회사 전환 시 자사주 활용이 재벌 총수일가의 지분 승계에 활용되는 편법이라고 보고, 관련 법 개정에 힘쓰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에 대해 분할신주를 배정하는 경우 법인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19대 국회에서 폐기됐지만 20대 들어 재발의했다. 박 의원은 또 자사주 처분 시 특정인에게 '백기사' 형태의 지분 매각을 불허하는 법안도 내놨다. 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 사례를 전례로 삼았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자사주의 신주 배정을 아예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제윤경 의원은 공정거래법상 인적분할 시 미리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지난달 말 추가했다.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야당은 경제민주화 법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 확실시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재벌이 연루된 점은 국민의 공분을 사 명분도 충분하다. 이에 따라 총수일가 지분 승계가 끝나지 않은 기업집단 중 자사주 비율이 높고 총수일가 지분율이 낮은 경우 인적분할을 통한 체제 전환을 서두를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헤지펀드 엘리엇의 제안을 계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재계는 삼성이 그동안 축적해온 자사주를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12.5%였던 삼성전자 자사주 비율은 1년 사이 13.2%로 증가했다. 
 
자사주가 높은 기업들의 인적분할설도 분분하다.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K 역시 SK텔레콤(자사주 12.6%)과 SK케미칼(11.9%)의 인적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이 나오는 배경도 지주사 체제 전환 요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주주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목적과 연결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단이 줄어든 가운데 지배주주와 직결된 지주회사의 수익창구인 브랜드 로열티와 배당을 늘릴 방안으로도 꼽힌다.
 
아직 체제 전환을 이루지 못한 재벌그룹들은 비상이 걸렸다. 삼성과 함께 현대차와 롯데도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못했다. 순환출자가 없는 한화 또한 총수일가의 지분 승계 과정에서 후계들의 지분이 많은 계열사의 인적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들 모두 한 가지 더 풀어야 할 난관이 있다. 금산분리법으로 체제 전환 시 금융계열사 지분 보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연내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해왔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반재벌 정서가 불거지면서 제도 도입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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