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생존에너지'…기다리는 이웃들 생각하면 한시도 쉴 수 없죠 "

"김영란법·국정농단 사태 영향으로 기부 끊겨…기업 보다 소액기부자 늘어나야"
“정부 정책 현실성 없어 일자리 창출만이 근본 대책”

입력 : 2016-12-2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조용훈기자] 가구 대부분이 기름·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요즘, 아직도 우리 주변엔 연탄 몇백장에 의지한 채 겨울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허기복(60) 연탄은행 대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허 대표는 연탄은행뿐만 아니라 저소득층과 독거노인, 노숙인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밥상공동체도 함께 운영 중이다. 과거 목회자의 길을 걷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허 대표는 지난 1998년부터 전국에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들을 찾아다니며 기부받은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정부도 엄두를 못냈던 전국의 연탄가구수를 직접 발로 뛰어 조사했다. 연탄은행 초기에는 몇시간씩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연탄을 날랐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연탄사용 감산을 이유로 7년만에 연탄 공장도 가격을 인상했고, 연탄기부마저 줄고 있어 큰 걱정이다. 1년 중 겨울이 가장 바쁘다는 허 대표를 만나 국내 에너지 빈곤층의 현실과 대안을 들어봤다. 

연탄은행 시작 동기는.
 
30대 초반까지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대형교회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돌연 그만두고 1994년 강원도 원주로 내려갔다. 얼마 안 되는 담임목사 사례비를 아껴서 원주경찰서 앞 쌍다리 밑에서 밥상공동체를 시작했다. 집수리도 하러 다니고, 노숙자들 취업도 시켜주면서 지냈다. 그러다 어떤 분이 연탄 1000장을 후원을 해주신다고 했다. 당시에 너무 바빠서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런데 하도 해보라고 하셔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그때가 2012년 말이다. 시작하기 전에 사전 조사가 필요해서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냉방에서 일주일 동안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왜 그러고 계시냐’고 여쭤보니깐 ‘기름은 비싸서 못 때고 연탄을 때는데 연탄이 없다’고 하시더라. 그날 집에 돌아와 잠을 못 잤다. 그날로 연탄 1000장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연탄은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봉사자를 모집해 연탄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차가 없어서 2시간씩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배달했다. 봉사자들이랑 3시간동안 끌고다녔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지금은 연탄은행이 전국에 31개까지 늘어났다. 올해 겨울에는 현장에서 갑자기 가슴이 조여서 쓰러지기도 했다. 병원에 가보니 너무 과로를 했다고 그러더라. 겨울이 가장 바쁘다. 그렇다고 여름에 노는 게 아니다. 여름에는 전국에 연탄 가구를 조사하러 다닌다고 밥상공동체도 하고 일이 많다.
 
‘연탄’은 어떤 의미인가.
 
그분들은 단순히 기름보다 싸서 연탄을 때시는 게 아니다. 대개 평균 연령이 75세다. 특별한 직업 없이 파지를 수거하면서 사시는데, 주거환경이 열악한 월 소득 50만원 미만인 가구다. 기름을 땔 수 없으니깐 어쩔 수 없는 방안으로 연탄난로나 연탄보일러를 쓰신다. 그분들에게 연탄은 ‘생존의 에너지’다. 그렇게 해서라도 겨울을 나야한다는 거다. 연탄이라도 때서 추운 겨울을 견디겠다는 에너지 빈곤층(난방비 등 에너지 비용으로 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가구)의 절박한 고백이 연탄으로 나타나는 거다. 연탄을 배달하러 가면 그분들은 이렇게 귀한 ‘금탄’을 주시냐고 고마워한다.
 
지원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연탄 사용 가구는 전국에 17만7000가구 정도다. 자식은 있지만 돌보지 않거나 가정이 해체되고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다. 연탄은행이 연탄을 지원해 난방비를 절감하고, 따듯한 겨울을 나도록 도와드려야 할 가구가 12만 가구 정도다. 연탄은행이 다 드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많이 할 때는 5만 가구까지 지원한다. 연탄을 쌓을 수 있는 연탄광도 크지 않아 한번 가면 보통 150~200장정도 쌓아놓고 온다. 그걸로 한 달 때고 떨어질 때쯤 되면 다시 가는 식이다. 그래서 많이 가는 가구는 겨울에 6번 정도 방문한다. 주변에서 연탄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다른데 평균 한 가구당 보통 3번 정도 방문한다.
 
올해는 사정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연탄은행도 규모면에서는 굉장히 커졌다. 후원이 많이 들어올 때는 1년에 연탄이 700만장까지도 들어왔다. 사실 연탄은행은 1년에 450만장은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 4월까지 연탄을 드릴 수 있다. 올해 목표는 350만 장 정도다. 지난달까지 96만장 정도 들어왔고, 이번 달 150만장 정도 추가로 들어왔다. 사실 올해 초기에는 ‘김영란법’ 영향 때문에 기업들도 한동안 몸을 사렸는데, 연말에는 최순실 사태가 터졌다. 전반적인 분위기나 국민들도 이런 쪽으로 마음을 쓸 여유가 별로 없다.
 
연탄은행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 중 유명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유재석씨는 2013년에 무한도전 촬영차 백사마을에 연탄배달을 하러 왔다가 인연이 됐다. 그때 현장을 본거다. ‘아 이분들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때부터 이름도 없이 후원을 계속 했다. 그러다 내가 매년 기부를 하는데 알려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직접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제공했다. 유재석씨도 나한테 왜 멋쩍게 왜 얘기했냐고 묻기는 했는데, 나쁜일 한것도 아니고 또 선한 영향력을 어딘가에 전할 수 있으니깐. 유재석씨 말고도 배우 정애리씨는 연탄은행 홍보대사도 하고, 가수 션은 나랑 같이 활동한지가 10년이 넘었다.  전국을 같이 돌아다닐 정도다. 울릉도, 제주도까지도 간다. 얼마전에는 미국 어느 교회에서 션한테 연탄은행 얘기를 듣고 8500만원정도를 후원했다. 또 배우 차인표씨, 박신혜씨도 있다. 얼마전에는 송중기가 소속된 연예기획사에서도 후원했고, 가수 이적씨도 연탄 10만장 후원했다. 실제로 만나보면 연예인들이 굉장히 착하고 단순하다. 오히려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후원할 때 다른사람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빅뱅 승리나 배우 박하선씨같은 경우는 직접 연탄배달 봉사도 하고 가는데, 오히려 본인들이 더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정부 대책은 따로 없나
 
정부에서 연탄사용 가구 중 저소득 가구에는 인상된 가격만큼 연탄쿠폰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잘 모르는 소리다. 한 가정이 겨울을 나려면 연탄 1000장 정도가 필요하다. 연탄쿠폰으로 대략 400장 정도 살 수 있는데, 쿠폰을 받아서 배달하는 사람한테 건네주면 쿠폰에서 연탄 배달료를 빼고 남은 금액만큼만 연탄을 가져다준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연탄 한 장당 배달료가 100원정도 붙는다. 그러니깐 실제 400장 정도를 받아야 하지만 300장 정도밖에 안된다. 그리고 나머지 700장 정도는 인상된 가격으로 사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할 해법은 무엇인가.
 
에너지 빈곤층은 연탄이 싸서 때는 게 아니다. 연탄을 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기름 한 드럼(200리터)이 30만 원 정도 한다. 혹한기 때는 한 달에 두 드럼은 써야 한다. 근데 한 달에 월 수입이 50만원 미만인 분들이 연탄 대신 기름보일러를 어떻게 사용하나. 결국 정부가 연탄을 찾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던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연탄소비를 둔화시킨다고 연탄 가격을 인상했지만 연탄이 기름보다 비싸지지 않는 이상 그분들은 연탄을 계속 땔 수밖에 없다. 또 연탄 가격을 인상하려면 연탄과 관련한 기관의 의견도 듣고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정책을 세워서 발표하니깐 현실성이 떨어지는 거다. 결국엔 연탄을 사용하는 빈곤층이 인상되지 않은 종전 가격으로 연탄을 살 수 있게 연탄 가격을 이원제로 하든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연탄은행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연탄 후원천사 되기 운동같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소액기부문화를 정착시킬 생각이다. 지금도 연탄은행에는 소액 후원자가 상당히 많다. 전체 후원자 1만4000명 중에서 3000명 정도는 연탄 1장 가격인 600원에서 100장 정도의 금액을 후원하시는 분들이다. 금액이 적다는 걸 강조하는 게 아니라 기부문화를 확대하고 습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기업들은 후원 규모가 크지만 일시적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버리면 연탄은행 자체가 휘청거린다. 그래서 오히려 소액기부자들이 늘어나는 게 더 낫다. 또 매달 한 달에 한번 ‘네티즌의 날’이라고 개인적으로 연탄봉사를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다. 이렇게 소액기부나 봉사문화를 계속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다. 근데 가장 좋은 건 연탄은행 문을 닫는 거다. 그건 에너지 빈곤층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허기복 연탄은행·밥상공동체 대표.사진/연탄은행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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