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브릿지바이오는 바이오업계에서 독특한 사업 방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벤처사다. 일반적으로 제약사는 신약후보 발굴에서부터 임상, 허가, 판매까지 모두 진행하는 수직계열화된 개발 전략을 보인다. 이와 달리 브릿지바이오는 신약후보물질을 외부에서 도입해서 전임상과 임상에 집중해 라이선스 하는 방식의 사업을 영위한다. 핵심 연구를 주도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 파트너와 손을 잡는 수평적인 구조다.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중간 단계 역할만 도맡는 셈이다. 이정규 대표가 회사명을 브릿지바이오로 지은 이유다. 브릿지바이오는 지난해 9월 설립 이후 올해 기관투자가들로부터 145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화제가 됐다. 지난달 미국 존슨앤존슨 인큐베이션 센터에 입주하며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이정규 대표는 혁신적 신약을 개발해 글로벌제약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이정규 대표는 18년 넘게 신약개발 등에 전념해 온 바이오업계의 잔뼈 굵은 인사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LG생명과학(068870), 크리스탈지노믹스, 렉스바이오 등을 거쳤다. 신물질을 개발하고 임상을 거쳐 약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매력적인 바이오를 두 아들에게도 권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며 이 대표는 웃어보였다.
브릿지바이오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개발중심바이오텍)이라는 다소 생소한 사업모델을 도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NRDO란 신약 후보물질을 외부에서 들여와 전임상 및 임상개발을 진행하는 개발 중심 바이오텍을 의미한다. 판교에 위치한 브릿지바이오에는 실험실이 없다. 국내외 제약 업계 출신의 전문가 6명이 전부다. 이 대표는 십여년전부터 이 모델에 주목해왔다.
이 대표는 "국내에 사업개발적인 관점을 가지고 초기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 있다면 다수의 학교와 정부연구기관의 프로젝트를 통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십여년전 렉스바이오라는 벤처를 운영할 당시 투자자들이 이러한 모델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자금력이 갖춰지고 있는데다 외부 위탁연구기관도 늘어나는 등 국내에도 NRDO를 위한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이 대표는 브릿지바이오에서 NRDO라는 모델에 가상운영(Virtual Operation)이라는 개념도 더해 전임상과 임상도 모두 외부에 맡기고 있다.
브릿지바이오 같은 NRDO 바이오텍의 출현은 글로벌 제약업계의 구조적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신약 발굴부터 임상까지 연구개발의 모든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글로벌제약사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자체적으로 후기 임상 개발 기능을 강화하며 바이오텍을 통해 외부로부터 초기 연구개발 과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NRDO는 내부 자금집행 내역이 인건비, 연구개발비 등으로 비교적 단순하고, 공장이 없고 인력 형태가 간단해 M&A시 인수하기에 매력적이서 각광받고 있는 모델"이라고 자신했다.
브릿지바이오가 현재 개발중인 파이프라인은 한국화학연구원과 성균관대학교가 공동발굴한 염증성면역질환 치료 물질 'BBT-401(펠리노-1 저해제)'이다. 펠리노-1은 성균관대학교 박석희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기능을 밝힌 표적단백질이다. BBT-401은 현재 약물과 비교해 질환부위 상피세포의 재생 및 장점막 내의 점액체 재생 측면에서 뛰어난 효과를 나타냈다.
이 대표는 이달 초 임상에 필요한 시료 합성과 전임상에 특화된 중국의 CRO인 WUXI(우쒸)를 방문해 전임상 계획을 논의했다. 2017년 전임상을 마친 뒤 임상 허가 신청까지 계획하고 있다. 바이오리더스 · 연세의료원과 함께 진행 중인 개발 후보 발굴 단계 과제들로부터 개발 후보 선정을 통해 전임상도 계획 중이다.
"빅파마가 프로젝트를 검토할 때 시장성보다는 미충족 수요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면서 글로벌 라이센싱이 가능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가 한미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브릿지바이오
이 대표는 브릿지바이오는 미충족 의료수요 시장에 집중하며 '혁신적인 신약'을 추구한다. 그는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계열내 최초약물)이 등장하고 두번째, 세번째 약물이 개발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 혁신적 신약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남이 하지 않는 약물을 새롭게 개발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신념이다. 주로 ▲ 비항암제 질환군 ▲ 항체발굴이 어려운 표적들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브릿지바이오는 올해 145억원 규모의 시리즈(Series)A투자를 완료했다. 바이오업계에서 시리즈 A로는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BBT 401의 혁신성이 인정된 것이 그 첫번째 비결이지만 이 대표가 투자자와 신뢰구축에 공을 들인 것도 한몫했다.
이 대표는 바이오벤처와 투자업계와 간극을 줄이기 위해 ▲한 달에 한번씩 지출 비용 공개 ▲한 달에 한번 기관주주 대상 간담회 실시 ▲ 세 달에 한번 주주네트워크 미팅 개최 ▲ 한 달에 한번 개인주주 대상 경과보고 레터링 여러가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투자 업계 간 신뢰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잘 되는 일도, 잘 못되는 일도 모두 공개해 신약개발의 울퉁불퉁한 과정을 모두 내보이는 것이다. 사외이사나 업계로부터 도움 받아가며 동거동락해가는 과정을 통해 바이오벤처는 성장할 수 있다"
최근 외부인사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를 구성한 것도 투자업계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총 6명 중 이 대표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을 사외이사로 구성했다. 이 대표는 "제가 일을 잘 못한다 싶으면 사외이사들이 저를 해임할 수도 있는 구조"라면서 "그만큼 외부의 비판적인 의견과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이어졌다. 그는 "한미 사태만 해도 신약개발이 중단된 것에 촛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약개발에 매진해온 열정에 주목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상보다는 업계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줘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바이오를 둘러싼 환경에서는 신약에 대해 '확실하느냐' 고 묻지만 바이오는 불확실성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일 뿐 확언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그는 수차례 강조했다. 오히려 '확실하다'고 답하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연속창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연속창업이 이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돈과 지식이 함께 결합되어 움직이며 바이오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기업을 만들고, 투자금을 회수한 경험이 있다면 새로운 벤처 창업은 물론 아이디어가 좋은 벤처에 투자하는 일에도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블확실성을 제거하며 답에 가까워지는 것이 바이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진/브릿지바이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