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005490),
현대제철(004020) 등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이 설비 감축·생산 축소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철강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른 구조조정’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정부가 철강 구조조정을 철강업체 자율에 맡기다 보니 이들 철강업체들은 정부의 눈치를 살피면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강 공급과잉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조선·해운 사태의 여파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포스코의 포항 1후판공장이 올해 감산 및 설비재편 없이 정상 가동에 나선다. 다만, 시장상황 등을 살펴본 뒤 생산량을 조절할 방침이다. 사진/포스코
5일 포스코에 따르면 조선, 건설·토목, 산업기계 등에 주로 사용되는 후판의 생산 계획을 예년과 비슷한 규모로 정하고, 공장 폐쇄나 감산 없이 정상 가동키로 했다. 후판은 두께가 6mm 이상인 철강 제품이다. 선박 제작에 주로 사용되는 후판의 국내 최대 생산업체는 포스코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등 총 4개 공장에서 연간 700만톤의 후판을 생산하고 있다.
앞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후판과 강관 등 공급과잉이 심각한 품목에 대해서 사업재편과 설비조정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이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지난해 11월 9일 주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수요 급감에 대비해 후판 생산 능력을 조정하겠다”면서 “조선산업의 상황(수주 불황)을 감안해 후판 1개 라인의 가동 중단을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의 철강 구조조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972년 준공돼 가장 노후화된 포항 1후판공장의 가동 중단이 점쳐졌다. 하지만, 포스코 관계자는 “공장 가동 중단 및 감산 계획은 없고, 이미 올해 생산목표도 수립된 것으로 안다”면서 “생산량은 조선 등 전방산업의 시황을 지켜보면서 유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장 많은 후판을 생산중인 포스코는 정부 눈치를 보면서 당분간 버티겠다는 계산이 짙게 깔려 있다"며 "권 회장이 주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 업황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 역시 후판 설비를 감축·매각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은 지난 2009년 12월 연산 150만톤의 당진 1공장과 2013년 연산 200만톤의 당진 2공장을 준공했다. 현대제철의 총 후판 생산능력은 포스코의 절반인 350만톤 수준이다. 이들 후판 공장은 준공한 지 오래되지 않아 가동을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국제강의 경우 지난 1991년 준공한 연산 100만톤의 포항1공장, 1997년 준공한 연산 190만톤의 포항 2공장, 2010년 준공한 연산 150만톤의 당진공장 등 3개 공장, 총 440만톤 생산규모를 갖췄다. 하지만, 동국제강은 2013년 포항 1공장을 매각했고, 2015년 8월 포항 2공장도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조선 경기가 어려움을 겪자 2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현재 남은 당진공장의 가동을 멈출 경우 후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선 국내 철강 1,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후판생산을 줄여야 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동국제강의 경우 당진공장 마저 가동을 멈출 경우 후판 사업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9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국내 후판공장 7곳 중 3곳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내용의 중간보고서에 발표하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주형환 산업부 장관에 이어 12월 정만기 1차관까지 현장을 방문하면서 철강업계 구조조정 촉구에 무언의 메시지를 던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정치적인 문제로 힘을 잃어가는 만큼 철강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업계 1위인 포스코의 경우 버티다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업체가 나가 떨어지는 것을 구경만 하면 되기에 스스로 감산이나 사업재편 등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했다.
한편,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 3사는 지난 2년간 수주 절벽 탓에 올 하반기 수주잔량이 바닥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조선 3사는 일제히 올해 매출을 지난해 목표대비 30% 수준 낮춰잡았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