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 120년)①의약품 정책 따라 제약업계 '요동'

2010년 내수시장 종말…신약개발·해외진출 '살길'

입력 : 2017-01-1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원석기자]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기회와 위기가 혼재돼 있는 시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제약업계는 희비가 엇갈렸다. 2015년에는 총 8조원에 달하는 신약 기술수출로 제약업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1년만에 찬사는 냉소로 뒤바뀌었다. 글로벌 제약사와 체결한 기술이전이 연이어 해지됐기 때문이다. 국가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던 제약산업은 위기를 맞이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제약산업이 국가 미래성장동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120여년 업력의 제약업계는 복제약과 내수영업에서 신약과 해외진출의 체질개선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영세성과 후진성에서 탈피해 산업 선진화에 본격 돌입한 상태다. 이런 변화는 제약업계의 정책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국내 제약사 상당수는 창립 50년 이상된 장수 업체다. 1980년대까지 국내사들은 독점적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면서 수익성을 보전했다. 1990년대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신약과 경쟁하면서 시장 주도권에서 점차 밀렸다. 일부 상위사들은 이 시기부터 신약개발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인식하고 점차 신약 R&D에 착수했다. 
 
2000년대 이후 국내 제약업계 판도를 뒤바꾼 의약품 정책이 시행된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12년 일괄 약가인하다. 의약분업의 경우 전문의약품 시대를 열었다면, 일괄 약가인하의 경우 내수시장 시대의 종료를 알렸다. 
 
의약분업이란 처방은 의사로 조제는 약사로 의료 역할을 분할하는 정책이다. 의약분업으로 약국을 찾던 환자들은 병원으로 이동했다. 제약산업도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재편됐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으로 전문의약품이 특수를 누렸다. 일반의약품 사업 위주였던 제약사들은 정책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하향길을 걸었다. 전문의약품 시장 변화에 잘 대응한 동아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대웅제약, 녹십자가 상위권으로 등극했다. 
 
2000년대 제약업계는 전문의약품 복제약과 내수 영업으로 성장했다. 오리지널약을 모방해 만든 복제약 영업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관세장벽을 높이고 복제약 약값을 높게 쳐줬다. 보험약가를 후하게 쳐주는 대신 신약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부의 복제약 정책은 오히려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을 외면하는 쪽으로 작동됐다. 복제약만으로도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제품력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복제약에 대한 영업과 마케팅 활동에 집중했다. 복제약 판매에 따른 수익은 R&D에 투입되지 않고 불법 리베이트로 흘렀다. 
 
진입 장벽이 낮은 복제약 개발에 매달리면서 의약품 제조사는 600여개로 난립하게 됐다. 전체 생산액에서 상위 20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하향평준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19조원에 달한다. 전체 시장에서 복제약 비중은 40% 정도로 추정된다. 오리지널 신약 시장은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가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로 제약산업 변방에 머물렀다. 
 
신약개발 도전에 나서는 제약사는 일부였다. 글로벌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토종신약은 전무하다. 의약품 제조소는 600여개로 난립해 있지만 1조원 매출의 제약사는 3개뿐이다. 국내 제약산업의 초라한 현주소다. 
 
흔히 제약산업은 1개 신약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제약산업의 무역수지는 만성적자였다. 국내 제약산업은 영세성과 후진성의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산업보호 정책 아래 안전하게 성장해오던 제약산업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정부는 2012년에 제약산업 선진화를 위해 대대적인 개편에 나선다. 
 
2012년 시행된 일괄 약가인하는 복제약의 보험약가를 절반 수준으로 깎는 정책이다. 약제비 절감액은 약 1조7000억원이다. 이는 제약산업 19조원 규모의 10%에 맞먹는 금액이다. 제약사별로 10%가량의 매출이 증발한다는 계산이다. 연평균 10%에 달하는 의약품 시장 성장률은 일괄 약가인하 시행에 따라 0.03%로 떨어졌다. 
 
정부는 강력한 리베이트 억제책도 시행됐다. 2010년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2014년에 2번 이상 리베이트로 적발되면 보험급여에서 퇴출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도입됐다. 수십개의 동일 성분 복제약이 쏟아졌는데, 약효나 품질의 차별점이 없는 탓에 처방을 유도하기 위한 불법적인 리베이트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정책 시행으로 제약업계 영업이 급격히 위축했다. 
 
복제약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제약사들은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생존에 내몰린 제약사들은 해외진출을 돌파구로 삼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단순 복제약이 아니라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신약개발 R&D가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됐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분업과 일괄 약가인하 등 의약품 정책이 두번의 큰 변혁을 맞이하면서 제약산업의 판도도 변화했다"며 "국내 내수 시장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복제약과 내수 영업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제약사들은 신약개발과 해외진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011년 이듬해 시행된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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