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기자] 정부가 성과에 눈이 멀면서 창업 자체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이 높다. 창업 이후 회사를 이어갈 판로 개척 및 서비스 고도화 등에 대한 지원이 부재하면서 현장의 불만도 높아졌다.
기업용 정보보호 솔루션을 판매 중인 한 IT 기업의 대표는 30일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무리 뛰어나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일반 기업들과 거래하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에서 시범 사업용이라도 써준다면 레퍼런스(구축·판매 사례)를 확보해 판로 개척이 한결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업계에서는 창업 후 3~5년 기간을 이른바 '죽음의 계곡'이라 부른다. 뛰어난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갖고 있어도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은 이 시기에 초기 자본금이나 투자금이 바닥나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 첫 번째 생존 기로다. 이 대표는 "아무리 설명해도 정부는 예산을 이유로 어렵다고 한다"며 창업 이후 나 몰라라 돌아서는 정부를 질타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열린 기술기반 벤처기업 육성전략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래부
지난 18일 나온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업 활성화 방안도 숫자에만 집중됐다. 미래부는 올해 3조5000억원 규모의 신규 벤처 펀드를 조성하겠다며 벤처 투자 2조3000억원, 기술 창업 5만개,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500개를 목표로 내세웠다. 세부 내용은 ▲유사 창업 공모전 통·폐합 ▲대구·경기 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 거점 육성 ▲대학 과학기술 기반 창업 활성화 지원 등이다.
정부의 온라인 창업 플랫폼인 창조경제타운을 경험한 한 창업가는 "정부는 벤처기업의 수나 유치한 투자금만을 강조한다"며 "벤처의 우수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창업만을 부추기다 실패 후 개인은 물론 국가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에 대한 걱정도 없다. 또 다른 창업가는 "정부 얘기를 듣다 보면 창업 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올해부터는 기업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청의 창업 도약기(3~7년) 기업에 대한 예산 비중이 지난해 16%에서 올해 30%로 늘었다. 미래부가 30일 내놓은 K-ICT 10대 전략사업(지능정보·사물인터넷·클라우드 등)에는 대학이나 기업의 연구자가 스스로 기획하는 자유공모 방식의 과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담겼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제를 정해 과제를 발주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을 정부 과제로 채택해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줄이는데 주안점을 뒀다. 미래부는 올해 248개의 신규과제와 총 2750억원 규모의 정보통신·방송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