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탄핵정국에 대선정국까지 맞물려 뒤숭숭한 상태다. 지난 11일 대보름날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대립하며 휘영청 밝은 달님을 무색케 했다. 촛불집회 참석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2월 내 탄핵과 황교안 총리 사퇴,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촉구한 반면, 태극기 부대는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탄핵 기각을 요구했다.
이처럼 양 그룹의 공통 키워드는 박 대통령 탄핵이었다. 일부 국민은 탄핵 기각을 기대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헌재는 3월 중 탄핵을 인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이미 무르익고 있는 대선시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전례 없이 싱거운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정책을 둘러싼 후보 간 뜨거운 열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투표일이 눈 깜짝할 사이 다가와 유권자는 어쩔 수 없이 제일 무난한 후보 하나를 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선거 경쟁이 치열하게 달아올라야 유권자는 흥이 나고 투표욕구 또한 커지는 법인데 벌써부터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저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로운 소식이 있다면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와 황교안 총리가 여론조사 지지율 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정도이지만, 이는 그들의 정치적 매력이 발산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는 지금 전례 없는 대선 열전이 진행되며 정치가 스포츠 경기처럼 흥행하는 중이다. 좌·우파 대선주자가 확정되고 나머지 7~8명의 주자들도 공식적으로 링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됐다. 공화당 피옹 후보의 부패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그의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국민여론도 고조되는 중이며, 39세의 엠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진보·중도를 표방하며 신선한 이미지로 유권자들을 사로잡아 여론조사에서 선두 주자로 껑충 뛰어 오르는 이변을 낳고 있다.
불어에 ‘스타리자시옹(Starisation)’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개인을 한 스타로 변모시키는 것을 말하며 스포츠 선수나 미디어 관계자, 주요 정치인을 스타로 만드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본래 경멸적 의미로 쓰였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정치계에서는 참신하고 젊은 정치인들을 주요 요직에 기용하고 그의 배경과 능력을 주목받게 해 대중의 이목을 끌게 한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30대의 신인 장관 3명을 전격 기용해 스타로 키웠다. 그 중 한 명이 이번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마크롱이다.
당시 36세의 약관으로 장관 자리를 꿰 찬 마크롱은 프랑스 국민의 인정을 받아 하루아침에 대통령 감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커리어를 보면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마크롱은 파리 10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 de Paris)으로 옮겨서는 정치를 공부했다. 지난 2001년에는 국립행정학교(ENA)에 들어가 2004년까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질을 익혔다. 이때부터 그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으며 2002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 리오넬 조스팽이 실패한 이유를 ‘좌파가 프랑스의 안전 문제에 의연한 입장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로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했다.
마크롱이 사회당의 멤버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2006년부터 장 조레스 재단(사회당 창립자 장 조레스를 기리기 위해 설립)과 협력해 일했고, 2010년에 올랑드와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마크롱의 경제 경험은 2004년 국립행정학교 시절 재정 총검사 본부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2007년에는 아탈리(Attali) 위원회에 들어가 프랑스 경제성장 방안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올랑드가 대통령이 된 후 2012년 5월 마크롱은 이 위원회의 부서기장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기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경제산업통산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1962년 퐁피두 정부의 젊은 장관 지스카르 데스탱 이후 최연소 장관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의 마크롱 발탁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정치를 즐겁게 해 주는데 큰 기폭제가 되었다. 대중들에게 정치는 프로 스포츠 경기에 뒤지지 않는 흥미롭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이런 즐거움을 주기보다 길거리의 난타전을 연상시키는 그런 장면으로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정치는 하나의 무대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관객이 없으면 무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 진정한 쇼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면 다양한 실력 있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정당은 정치무대에 스타를 모셔다 깜짝 쇼를 연출하려 말고, 전속 배우를 스스로 양성하라. 이번 대선을 계기로 참신한 젊은 인재를 발굴해 대중의 이목을 끌게 하고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문화를 만들기 바란다. 아울러 각 후보는 포퓰리즘 공약을 자제하고, 소박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섬세한 정책으로 유권자들에게 소소한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무대를 연출하기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