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문제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관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대 덕목이 주주의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관련 당사자들은 무시한다. 돈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 부의 창출은 무시한다. 개인적으로 부유해지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공익은 쓸데없다고 생각한다.”(304쪽)
세계적인 석학인 찰스 햄든-터너와 폰스 트롬페나스는 ‘의식 있는 자본주의’에서 전 세계를 이끌어 온 영미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들이 보기에 공동체보다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부의 창조보다 돈 벌기에 집중한 이 모델은 다원화된 오늘날 경제를 이끌기에 더 이상 충분치 않다.
두 저자는 18~20세기를 주도해 온 영미식 자본주의의 기저에 프로테스탄티즘이 있다고 본다. 성서에 등장하는 ‘말씀’처럼 기업에는 신성한 최고경영자(CEO)의 ‘지시사항’이 있었다. 기업은 율법처럼 법규를 제정했고 직원들은 신자들처럼 개별적 자격으로 이에 맞춰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꽃피운 건 보편적 규칙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문화였다. 서구권의 경제주체들은 자기 이익을 우선에 두는 사고를 따르게 됐고 이는 미국과 유럽 국가를 경제 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경제학의 기준인양 세계로 뿌려져야 마땅하다는 정당성도 획득하게 됐다.
하지만 두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돈을 최종 목적지로 여기는 이 체제의 특성상 기업들은 주주를 최우선시하며 편법이나 사기를 자연스럽게 일삼았다. 협력보다는 경쟁을 우선 가치로 여겨 한정된 자금을 두고 흥정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성장은 한계에 직면하게 됐고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됐다.
두 저자는 자기 이익에 급급해 파생상품을 무한정 늘려나가는 유럽의 금융권과 조세회피를 일삼는 글로벌 기업들, 납품업체를 착취해 신뢰를 잃었던 제너럴모터스(GM)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서구식 모델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저자는 ‘다양성의 수용’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이들이 보기에 일부 동양권 국가들은 서구와 달리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막대한 부를 창출해왔다. 1979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공동체주의라는 큰 틀 속에서 서구의 가치들을 점진적으로 끌어들여왔다. 이를 토대로 37년간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싱가포르 역시 중국에 앞서 동서 융합의 경제 모델을 성공시킨 대표적 국가다.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의 문화 속에서 말레계 원주민과 중국계 이민자의 가치가 어우러지며 아시아의 대표 강소국이 됐다. 2013년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영국의 2배를 뛰어넘게 된다.
특히 두 저자는 이들 국가의 대표적인 부 창출 비결로 ‘관련 당사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꼽는다. 주주만을 존중하는 변질된 영미식 자본주의와 달리 이들 국가는 직원과 납품업체, 고객,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존중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해왔다.
두 저자는 “중국에서는 ‘꽌시’라는 특유 문화가, 싱가포르에는 납품업체, 고객, 직원을 집안 식구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다”며 “이런 문화는 A의 지갑을 비워 B의 지갑을 채워주는 서구식 ‘돈 벌기’가 아닌 관련 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얻어 사회 전반의 ‘부 창출’을 이루는 효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책은 이러한 다양성 존중의 경제적 가치를 여러 개별 기업을 통해 엿보기도 한다.
스타벅스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커피 재배자들을 인도적으로 대함으로써 주가를 10배나 끌어올릴 수 있었고 메드트로닉스는 돈이 아닌 1000만명의 삶을 연장한다는 고차원적 목표로 수익을 50배나 늘릴 수 있었다.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평등한 관계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해내는 독일어권의 중소기업들을 일컫는 ‘미텔슈탄트’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신의 이익보다 소속 공동체의 부와 사회적 목표 진전을 위해 힘쓰는 ‘세계은행연합’, 지속 가능한 환경 보존을 위해 힘쓰는 인터페이스와 브리티시 슈가 등도 사례로 제시된다.
‘자본주의의 아홉가지 비전’이 원제인 이 책은 영어권 국가에선 2015년에 첫 출간됐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에 ‘반다문화 정서’가 확대되면서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난민 입국 거부에 이어 최근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 명령이 국제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두 저자는 “미국과 유럽이 이대로 가면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이민자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며 국가의 쇠락을 남 탓으로 전가시킬 것”이라며 “2000년 실리콘밸리 전체 부의 3분의 1이 1970년 이후 미국으로 들어온 중국인과 인도인에 의해 창출됐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조언한다.
'의식 있는 자본주의'. 사진/세종서적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