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국내 전장사업 투자를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최근에는 울산과 구미가 투자대상 지역으로 거론됐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들도 소문의 원천을 부정했다. 아마도 소문엔 삼성이 투자해줬으면 하는 지역민들의 바람도 섞여 있은 듯하다. 구미지역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투자해준다면 고맙지만 아쉽게도 소문의 실체는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구미에선 최근 LG전자가 파주로 이전한다거나, SK가 인수한 LG실트론이 이천으로 옮겨간다는 등의 소문도 나돌았다. 지자체가 화들짝 놀라 확인해보니 역시 루머였다. 삼성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으로 호된 경험을 치른 터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심경이 아닐까 싶다.
지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은 구미에서 사랑받는 기업이었지만 수년 사이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베트남 등 해외로 생산물량을 조금씩 옮기면서 지역경기도 나빠졌다. 이제 해외에서 휴대전화 90대를 만들면 구미에선 10대 정도 만드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글로벌 불황까지 겹쳐 지역경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삼성이 5~6년 전부터 서서히 구미에서 생산물량을 줄여줘서 그나마 고맙다”고 했다. 중소기업들이 대비할 시간을 줬다는 얘기다. 삼성이 이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기도 하다.
반대로 LG와 일본의 도레이는 요즘 구미에서 인기가 높다. LG는 구미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투자를 이어가고 있고, 도레이는 기존 섬유사업 증설에 더해 첨단소재 신사업의 둥지를 틀고 있다.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5단지까지 있는데, 도레이는 2단지만 빼고 모두 사업장을 갖고 있다. 구미엔 도레이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계 기업들도 많다. 과거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추진했는데, 중국엔 기술 유출 우려가 커 한국행을 택했다. 구미시가 외국인투자촉진법의 인센티브를 활용해 유치를 잘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장들도 과거처럼 일자리 효과는 크지 않다. 스마트팩토리 등 자동화 공정이 대부분이라 대기업의 투자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효과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도레이의 탄소섬유를 비롯해 구미에는 전기차 등 자동차 부품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 음극재, 양극재, 캔을 모두 이곳에서 생산한다. 기존 휴대전화에 납품하던 부품 공장을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전향한 중소기업들도 많다. 이들은 현대차가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하루 빨리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주길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로서는 주력 엔진 기술을 버려야 해 녹록치 않은 결정이다. 노조에서도 전기차를 반대한다고 한다. 전기차가 기존 자동차에 비해 공정이 단순해 일손이 줄어들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외부에서 구매해 부착하고 전장과 외장만 갖추면 자동차가 완성된다. 결국 중소기업들이 삼성의 대안으로 찾은 현대차도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구미지역 문제는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선 어쨌든 대기업의 투자가 절실한 실정이다. 삼성이 떠난 빈자리를 일본 기업 도레이가 대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유턴을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늘린다고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결국 중소·벤처들이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제도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간다. 현 정권의 ‘창조경제’ 정책은 최순실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 공약을 제시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재계팀장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