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기각하면 승복해야 한다는 야권 내 분위기에 대해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하더라도 용인하자는 것은 헌재더러 부당한 결론을 내라고 사실상 기회를 주는 꼴"이라며 "자유한국당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민주당이나 민주당 후보가 승복을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명 시장은 16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 "지금은 승복이 아니라 헌재가 탄핵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며 "탄핵안이 기각되면 민의를 따르지 않은 자들에게 책임을 묻도록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발언은 지난 10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비롯해 최근 야권에서 제기된 '승복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지난해 유력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탄핵정국을 이끈 그는 이날도 "제가 과격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그게 민의였기 때문"이라며 "이 나라 주인인 국민의 뜻을 대리하는 헌재는 국민이 바라는 바대로 행동해야 하고, 범죄를 저지른 머슴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승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16일 오전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 시장은 헌재의 기각에 불복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가치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저항권이라는 게 마치 총 들고 혁명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국민으로서 촛불 들고 광화문에서 다시 투쟁하는 것"이라며 "헌법기관이 결정한 것이니까 따르자고 하는 것 자체는 결코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저는 우리 대한민국 역사에서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국민에 의해 밀려날 뻔하다가 결국 다시 어찌어찌해서 복귀했던 과정이 반복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며 "정상적인 시국이라면 시스템을 100% 존중해야겠지만 탄핵정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부연했다.
"대연정론, 야권 정체성·정권교체 당위성 훼손"
이 시장은 그러면서 그가 적폐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의 대연정을 언급한 안희정 충남지사를 재차 지적했다. 그는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은 당의 집권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그분이 취한 정치적 포지션이 유용했던 것 같다"면서도 "대연정은 안 지사가 아주 세밀한 정치적 판단에서 말했겠지만 야권의 정체성 또는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권 지지자들에게는 선호도를 올릴 수 있겠지만 야권 경선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에서는 이 시장의 정치적 약점으로 지목된 중앙 정치경험 미흡과 당내 세력 부족에 대한 우려도 다시 제기됐다. 그는 "중앙정치 경험이 많고 세력이 있다, 조직이 있다는 게 좋은 측면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사실 대선주자 가운데 직접 국가운영을 해 본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옆에서 구경한 사람만 있다"고 받아넘겼다. 그는 또 "인구 150만명의 광역단체장과 100만의 기초단체장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반문한 뒤 "저는 성남시장으로서 강남벨트라는 분당구과 철거민 도시인 중원구의 경제적·감정적 격차를 통합했기 때문에 지금도 분당에서의 지지율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당내 세력 부족에 대해서도 "제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씀하는데, 인적자원을 많이 가진 쪽이 국정운영을 잘 하리라는 것은 환상"이라며 "그렇게 사람을 모으고 집권해 가까운 사람들에 한자리씩 주다가 그게 잘못하면 최순실이 된다"고 말했다.
"법인세 올려도 기업 탈출 없을 것"
이 시장은 재벌해체 정책과 관련,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이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국만큼 (법을 어기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5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440개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8%포인트 정도로 높이자는 것인데, 그래봐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법인세 실효세율 25%에 못 미친다"며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내부거래나 일감몰아주기를 해도 그냥 넘어가는 나라가 없는데, 기업 탈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미·북일 수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지금처럼 모든 대화채널을 다 끊고 제재 일변도로 가면 결국 무력충돌 밖에 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북정책에서 제재와 압박은 물론 대화와 협력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시장의 이런 주장에 대해 "북한의 평화협정론과 똑같다", "국제적으로 평화협정을 빙자하는 협정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그는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저는 남북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화하자는 것"이라며 "국제관계에서 평화협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더라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반도의 운명을 주변국 처분에 맡기지 말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며 "정책은 우리에게 필요하면 해야지 그게 적대적인 상대방의 주장이니까 안 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에서는 앞서 이 시장이 노동부 장관을 시키겠다고 언급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화제에 올랐다. 패널들은 한 위원장이 불법시위를 이끌어 구속된 만큼 공직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재명 시장은 "한상균 위원장을 언급한 것은 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를 보호할 의지와 철학을 가진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며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도 시간이 지나면 공직과 경영에 복귀하는데 죄를 지었으니까 공직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