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가짜뉴스와 한국 보수언론

입력 : 2017-02-21 오전 6:00:00
전쟁이나 혼란기에는 유언비어나 루머가 판을 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소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귀신이 태어나 “이 전쟁은 곧 끝난다”는 예언을 남기고 죽는다는 등의 기묘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갔다.
 
이러한 현상을 하찮은 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몇몇 사회학자들은 이를 통해 사람들의 전쟁 종식에 대한 염원과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이해하려고 한다. 발언의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도록 소문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이러한 유언비어에는 ‘보도와는 달리 이 전쟁은 패전으로 끝난다’는 민중 이성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식이다.
 
지금 한국 사회도 적지 않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치열한 진영논리가 극으로 치닫고 유언비어가 판을 친다. 언론은 유언비어라는 용어보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이 가짜뉴스의 확산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 지지세력은 특검을 성추행범으로 몰고, JTBC의 태블릿PC 보도를 ‘종북의 음모’라고 하는 등 근거 없는 정보로 SNS와 인터넷 포털을 장식한다. 이는 전시의 유언비어처럼 이른바 ‘친박(박근혜)’세력이 탄핵을 막기 위한 세를 결집하고자 자신들의 이성(?)으로 만든 가짜뉴스다.
 
가짜 정보의 사용은 하나의 이론이나 의문을 퍼트리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 콘스탄틴 대제가 가짜 문서를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증여하고 이를 근거로 특권과 영토를 보장받았다. 또한 19세기 말 프랑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 때는 앙리 대장이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부당하게 제압하기 위해 완벽히 꾸며낸 서류를 이용했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가짜뉴스는 어떠한 사안을 악의적으로 기만하는 무기로 작용한다. 특히 선거에서 상대편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SNS나 인터넷 포털을 통해 가짜뉴스를 고의적으로 생산해 퍼트리는 방법이 사용된다.
 
프랑스도 오는 4월23일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한 경계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을 받은 것처럼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1위로 급부상한 엠마뉘엘 마크롱이 공격 대상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마크롱의 “강한 유럽, 유럽의 발전, 유럽의 큰 영향력을 위한 프로젝트”를 원치 않기 때문에 유럽해체를 노래하는 극우정당의 마린 르 펜을 돕고 마크롱의 선거운동을 흔들어 대고자 거짓 정보를 스푸트니크(Sputnik·러시아 국영신문) 영자지에 실어 전파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가짜뉴스는 불어로 앵톡스(Intox)라고 불리며 ‘기만작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러한 앵톡스와 싸우기 위해 지난해 9월16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를 포함한 주요 SNS 업계와 20여 주요 언론 관계자들이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퍼스트 드래프트 뉴스(First Draft News)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목적은 기자와 시민들이 가짜뉴스와 맞서도록 관심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미국 구글이 지원하는 이 운동에 프랑스에서도 르몽드와 프랑스앵포 등이 참여했다.
 
또한 지난 2월6일 르몽드와 리베라시옹을 포함한 프랑스 8개 언론기관은 SNS에서 만연되고 있는 가짜뉴스와 전면전을 펼치기 위해 페이스북과 따로 손을 잡았다. 르몽드 국장 제롬 페놀리오는 정보내용이 편집상 문제를 일으킬 때 알고리즘 상에서 작용이 가능하도록 ‘가짜뉴스 필터링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프랑스 언론과 콘텐츠 플랫폼 업체들이 여론을 왜곡하는 가짜뉴스 생산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대책 마련에 매진하는 중이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고작 경찰이 ‘허위·악의적인 가짜뉴스 제작과 유포행위를 포함한 사이버 범죄를 오는 5월17일까지 특별단속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전부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는데 보수언론은 꿀 먹은 벙어리다. 어디 이뿐인가. 일부 보수언론은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보도까지 함으로써 진짜뉴스로 탈바꿈시키는 용감무쌍한 행위까지 일삼는다. 언론이라기보다 보수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진영논리를 일삼는 주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보수언론에게 월터 리프먼의 다음 구절을 선물로 주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어느 진영이나 거의 모두가 자기들이 그리고 있는 적의 상을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다. 즉 있는 그대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실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햄릿처럼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는 커튼 뒤에 숨은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잘 못 알고 찔러 죽이고, 아마도 햄릿처럼 이렇게 덧붙이리라. ‘너, 지지리 못난 바보 같으니. 어리석게 어디나 참견하니 이 꼴이지! 나는 너를 더 큰 상전인 줄 알았지. 잘 가라, 이것도 네 운명이지.’”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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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