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글로벌 선박 공급과잉과 물동량 감소로 고사 위기에 내몰린 해운업계의 생존을 위해서는 한국형 해운금융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해운 강국들은 잇따라 자국 선사를 위한 금융지원책을 내놨다. 덴마크는 머스크에 5억2000만달러의 수출신용기금을 지원했다. 독일은 하파그로이드에 18억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서줬고, 프랑스는 CMA-CGM에 1억5000만달러를 지원했다.
우리 정부도 국적 선사에 대한 금융지원에 나섰지만 앞서 해운 강국들과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해운업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시장 논리만 내세운 탓에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은 부채비율이 높은 해운기업의 재무 리스크를 일반 제조업과 같은 수준으로 인식한다"며 "이렇게 되면 실제보다 과장하게 되고 지원 시점을 놓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해운시장의 변동성을 잘못 예측해 유동성 확보를 해야 할 시점에 은행이 자금을 회수하는 일이 발생하고, 결국 선사의 재무상황만 악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파산한 한진해운과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 CMA-CGM의 사례에서도 이 같은 차이를 엿볼 수 있다. CMA-CGM는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대규모 적자에 이어 채무지급유예를 검토할 만큼 재무상황이 악화됐지만 프랑스 정부가 막판 지원을 결정하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반면 국적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파산선고 끝에 시장에서 퇴출됐다. 한국 대표 선사가 몰락하면서 글로벌 대형 화주들의 신뢰감 또한 낮아졌다. 업계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해운업의 특성을 반영한 한국형 해운금융 시스템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위기 때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핵심자산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경우 장기적인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해운금융 지원제도도 높은 리스크로 인해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을 들어 정책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한국선박회사를 한국형 선박은행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신조 발주, 중고선 매입, 대선 등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면 선사들이 시황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출자해 1조원 규모로 설립된 한국선박회사는 선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선사 소유 선박을 시장가로 매입하고 장부가와의 차이를 유상증자를 통한 출자형태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부산항 부산신항컨테이너터미널(BNCT)에 접안해 있는 세계 3위의 프랑스 선사 CMA-CGM 소속 '알렉산더'호. 사진/부산항만공사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