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사님, 명예박사님

입력 : 2017-05-30 오전 10:30:37
 업무상 과학기술인을 자주 만난다. 가끔 호칭 때문에 당황한다. 나는 특별한 직책이 없으면 통칭해서 ‘박사님’이라고 부른다. 종종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직 박사는 아니고요. 그냥 선임 연구원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원고에 ‘000 박사’라고 썼다가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박사라고 하면 안 되는데….” 항의를 한 분은 당사자였고 곤혹스러워했다. 기술원을 연구원이라고 표기해 나중에 수정한 적도 있다. 지금은 기술원·연구원, 선임·책임을 구분하지만, 처음에는 자주 헷갈렸다. 과학기술 분야에도 다양한 신분과 직급·직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표기할 때는 신중하게 처리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박사님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그게 편하다. 과학자라면 무조건 박사라고 생각했던 어릴 적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이유도 있다. 이때 박사님은 상대방의 신분이나 직급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분야를 가장 정확하게 잘 아는 과학기술인을 의미한다. 존경의 뜻도 담겨 있다.
 
물론 박사 학위가 없는데도 박사라고 불릴 때 그들이 당황하는 이유를 안다. 박사의 권위를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박사 호칭에는 단순히 학력이나 학위의 의미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로서의 권위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과학기술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박사란 그런 존재다.
 
마찬가지 이유로 박사 학위 박탈은 과학기술인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이자 가장 큰 징벌이다. 지난 2014년 1월 생명과학은 물론 전 세계 과학계가 흥분에 휩싸였다. 갓 태어난 쥐의 분화한 세포를 유전자 조작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용액에 담갔다가 배양했더니 세포 분화 이전의 초기 상태로 바뀐다는 실험 결과가 네이처에 게재됐다. 이른바 ‘자극야기 다능성 획득(STAP)’ 세포.
 
생명과학 이론을 다시 정리해야 할 정도의 획기적인 성과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연구를 주도한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젊은 여성 연구원 오보카타 하루코는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노벨상이 유력하다는 성급한 예측도 쏟아졌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조작된 실험이었다. 네이처는 논문을 철회했다. 학위 논문 표절까지 드러나자 오보카타의 박사 학위는 취소됐다.
 
2001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주인공은 얀 헨드릭 쇤이라는 젊은 물리학자였다. 그는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무려 13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어떤 기간에는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논문을 8일마다 발표하기도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분자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네이처 논문이었다. 반도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전자기기가 새로운 혁명기를 맞이할 것처럼 보였다. 그의 논문 역시 조작으로 드러났다. 실험 결과는 거짓이었다. 그 역시 벨 연구소에 쫓겨났고, 박사 학위를 박탈당했다.
 
비단 과학기술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비위 사실이 드러나면 박사 학위를 박탈당한다. 슈미트 팔 헝가리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논문 표절이 드러나 박사 학위가 취소됐다. 헝가리 젬멜바이스 대학교 측은 대통령의 학위를 취소하며 “박사 논문의 상당 부분이 표절로 드러났으며, 그는 과학적·윤리적 방법론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명예박사도 비슷하다. 며칠 전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대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식 연설을 했다. 그는 하버드대에 입학해 컴퓨터과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던 중에 페이스북을 설립하고 2005년 대학을 떠났다. 하버드대를 중퇴한 지 12년 만에 세계 5대 부호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부자로 성공했다고 학위를 준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신의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펼칠 자유가 없다면 모두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예박사 학위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그런 자유와 기회의 가치를 실현한 그에게 보내는 오마주다.
 
그런 의미가 사라지거나 퇴색된다면 명예박사 학위도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 학문적 업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우고 본받을 만한 가치를 실현한 이에게 주는 것이 명예박사 학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KAIST와 서강대를 비롯해 국내외 6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은 법의 힘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고 구속했다. 이런 대통령에게 본받을 정신과 가치는 없다. 당장 명예박사 학위를 취소하는 게 맞다.
 
박사든 명예박사든 존경과 권위가 유지될 때 빛을 발한다. 그걸 잃으면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학교로서도 범죄자에게 명예박사를 줬으니 이런 불명예가 어디 있겠나.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해곤 기자
이해곤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