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언제 우리에게 인문학의 열풍이 있었던가

입력 : 2017-06-08 오전 6:00:00
언제 우리에게 인문학의 열풍이 있었던가. 묻고 싶다. 혹자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최근에 와서 인문학적 열기가 남다르다고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런 의견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인문학을 중시하자,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자, 인문학적 성찰, 인문학적 상상력, 인문학적 글쓰기, 인문학 특강 등과 같은 인문학 관련 표현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많이 통용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또한 그러한 흐름은 긍정적으로 해석할만하다.
 
그러나 과연 인문학이 지속성을 갖고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면, 인문학의 열기는 일회성으로 그치고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종종 열리는 인문학 관련 강좌가 깊이와 연속성, 그리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계획 아래 이루어지기보다는 그냥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는 소비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인문학 경시는 완연하다. 최근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조 조정과 관련하여, 학과의 통폐합 대상에 우선적으로 인문학 관련 학과가 거론되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인문학 관련 강좌수도 상당수 줄어들고 있다. 그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다. 심지어 일부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과와 사학과도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취업률로 잣대를 들이대니, 인문학 관련학과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대학과 구성원의 고민이 점점 더 깊어갈 뿐이다. 정부가 그리고 있는 구조조정의 그림도 인문학 관련 학과의 축소 및 폐과가 중심 소재다.
 
이러한 현상으로 대학의 인문학 관련 학자들의 고민도 그 어느 시절 보다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을 책임질 인재들이 사라지거나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작금의 현상을 두고 인문학의 열기가 남다르다거나 인문학의 열풍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면 난센스다. 대학을 졸업한 취업 준비생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말의 하나가 ‘문송’이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의 준말이다. 만약 이러한 자조 섞인 언어가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으로 굳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인문학은 무한한 장점과 매력을 품고 있다. 인간과 관련된 근원의 문제를 천착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그 출발점이 사람이고, 종착점 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 문화 등 인간의 가치에 관련한 여러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인문학의 품속에 있다. 아무리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나아가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면, 그 능력은 오히려 악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인문학이 가장 우려하는 현상인 동시에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점점 더 팽배해지고 있는 물질만능적인 사고로는 우리 인류는 절대로 평화로워질 수도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지난 1월에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기본계획」 이 고사되어 가는 인문학의 위기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 넣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다. 이 기본계획을 착실하게 실천하고, 더하여 그 결과로 우리의 교육 현장과 사회에 인문학의 향기가 피어나길 기대한다. 자연과학과 공학적 사고가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인문학은 우리의 삶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준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학문의 발전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적인 사고가 인류에 공헌할 것이라며,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우리의 교육이 자기를 돌아보고 남을 배려하는 그런 글 한 번 써보지 못한 사람을 사회에 배출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에게 정말 ‘인문학의 열풍’이 불어온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살고 싶은 세상으로 되어간다는 뜻이다. 세상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체득하는 날, 아마도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인문학의 대중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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