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김광연 기자] 오는 12일자로 단행되는 고등검사장과 검사장 등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 반발해 일부가 사의를 표명했다. 8일 법무부에 따르면 윤갑근 대구고검장과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 대구지검장은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발표된 인사에 따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사 지휘 보직이 아닌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의 이동이 사실상 좌천성 인사로 여겨지면서 사의 표명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로 유상범 창원지검장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은 서울고검 검사로,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대구지검장으로 전보 조처된다.
특히 이들은 모두 검찰 조직 내 '우병우 사단'으로 꼽혀 왔던 인물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농단 사건 관련 현안 질문에서 이들을 포함한 '우병우 사단' 1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과 함께 명단에 있던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부산고검 차장검사)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현 대구고검 차장검사)은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면직' 징계가 청구됐다.
이중 윤갑근 고검장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의혹에 관한 검찰 특별수사팀장으로 활동했지만, 성과 없이 수사를 마무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수사팀은 출범 2개월이 지난 그해 10월30일에서야 우 전 수석을 소환했으며, 우 전 수석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조사를 받는 중간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황제 수사'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점식 부장은 지난 200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부부장검사 재직 시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했고, 2012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때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 이후 2014년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기 전 청구인 측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당시 통합진보당 대리인은 현재 신임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김선수 변호사다.
김진모 지검장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2014년 11월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우병우 민정비서관의 부탁으로 변찬우 광주지검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적용 배제 방침을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9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일하는 동안 민간인 불법사찰을 은폐하고, 증거인멸을 방조하는 등 검찰 수사를 무마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현준 지검장은 2009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당시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지만, 이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2014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로 근무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등 4대강 사업 책임자 수사를 지휘했다. 이 전 대통령 등 58명은 특정경제범죄법 위반(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지만, 검찰은 2015년 11월 혐의없음, 각하 등 이유로 전원 불기소 처분했다.
또 전 지검장은 2015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당시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져 유가족이 경찰 책임자를 고발했지만, 검찰은 노골적인 늑장 수사와 시신 강제부검 시도로 비판을 받았다. 검찰권 오남용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이 사건은 노승권 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지휘에서도 진전이 없는 상태다.
노승권 차장검사는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외에도 박근혜 정부 들어 최악의 검찰권 오남용 사건으로 거론되는 청와대 관제시위와 어버이연합 불법 자금 지원 의혹 수사, 민중총궐기 집회 관련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 대한 수사,
삼성물산(000830)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공단 배임 혐의 수사를 이끌었다. 노 차장은 돈 봉투 만찬 참석자 중 하나로 금품을 수수하는 등 검사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유상범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에 대한 수사팀장을 맡았다. 당시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십상시'가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청와대가 세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후 유출자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검찰은 비선 실세 의혹이 아닌 문건 유출에 대해서만 수사를 집중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사전에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정수봉 기획관은 2014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때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칼럼으로 쓴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를 주임검사로서 수사했다. 결국 재판까지 넘겨진 가토 전 지국장은 2015년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에 대해 "외교적 망신을 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대통령 1인을 위해 검찰이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법무부는 이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를 일선 검사장, 대검찰청 부서장 등 수사 지휘 보직에서 연구 보직 또는 비지휘 보직으로 전보하는 인사와 그에 따른 일부 보완 인사를 단행했다"며 "서울중앙지검장이 고등검사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하향 조정된 상태에서 검사장급 간부 2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도 병행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는 상당한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대검찰청의 한 검사장은 "참여정부 때보다 더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검장 출신의 변호사도 "이렇게 공개 망신을 주니 나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다른 검찰 간부들도 "할 말 없다"면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검찰 개혁을 의미한다고 진단하면서도 절차적 아쉬움과 우려도 나타냈다. 노영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어제(7일) 감찰 결과에 더해 '검찰 개혁'이란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병우 라인을 대거 제거한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할 것으로 보였지만, 좌천성 인사는 다소 비겁해 보인다"며 "앞으로 추가 인선에서도 우병우 라인이나 과거 혜택을 입은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검찰 개혁'이란 점은 이해하지만, 부분적인 맥락으로 보면 좀 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0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등 검찰 인사 관련해 제청은 누가 언제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나"며 "특히 노승권 검사는 감찰 징계로 경고 처분을 받은 다음날 바로 전보됐는데,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고 이해가 안 되는 인사"라고 지적했다.
최진녕 전 변협 대변인은 "'인적 대청소'란 말이 들어맞을 정도로 강력한 인사"라며 "조국 민정수석이 임명 당시만 해도 검찰 수사 지휘와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이번 인사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대통합이란 명제에도 이번 인사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며 "오늘 인사는 한마디로 '나가라'는 인사다. 앞으로 우병우 라인이 추가적인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인사로 앞으로 있을 검찰 인사 폭이 상당히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사퇴한 간부만도 고검장 1명에 검사장 3명인데, 사법연수원 23기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승진 임명으로 그 위 기수 상당수가 검찰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이 뒤따를 것으로 보면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줄사퇴가 전망되고 있다.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 수사를 맡은 윤갑근 특별수사팀장이 지난해 8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기자들과의 티타임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김광연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