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16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삼성과 한화간 구미공장 부지 매매계약이 무산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등으로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황이 되면서 성사 직전 방향이 틀어졌다. 그 틈을 비집고 대구시가 파격적인 제안을 해오면서 한화는 검토에 착수했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11일 “삼성전자 구미 1사업장 부지 매매 건은 계약이 성사 직전까지 갔었는데, 이 부회장 구속과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로 인한 계약 당사자 부재 등으로 무산됐다”면서 “(현재)대구시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구미 1사업장(6만여평) 안에는 방위산업체인 한화시스템(옛 삼성탈레스)이 있다. 부지 일부를 임차해 쓰고 있다. 2015년 삼성과 한화간 ‘빅딜’로 삼성탈레스가 매각되면서 만들어진 어색한 동거다. 빅딜 이후 삼성은 나머지 1사업장 부지까지 모두 한화가 인수해줄 것을 제안했다. 제시가격은 15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차기간이 만료돼 공장을 이전하게 되면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 수 있는 한화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계약이 틀어진 데는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삼성전자가 1사업장을 팔면 네트워크 사업과 의료기기 사업도 이전 또는 처분해야 한다. 이 부회장 부재로 인사마저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미 구미 산단 내 휴대폰 사업을 상당 부분 베트남으로 옮겨 지역 여론도 좋지 않다. 새 정부 출범과 이 부회장 재판 등을 고려하며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 사이 대구시가 부지 무상 제공을 비롯해 각종 세제 인센티브와 인프라가 좋은 최적지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 관계자는 “한화시스템이 방산 레이더를 생산하는데 입지적 제약이 따르는 등 이전에 몇가지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런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최상의 부지를 그룹 측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한 “장기적으로 인력 소싱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화시스템 공장은 35년 이상 노후된 건물이라 잔류를 결정해도 재건축이 필요한 사정이다. 이를 고려하면 구미에 남는 것보다 이전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들 수 있다. 물론 한화가 임차 기간을 연장한 다음 추후 삼성과 부지 매매 건에 대한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한화시스템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전을 원하는 의견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 1500여명 중 700여명이 대구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고, 구미에 거주하는 직원도 자취 형태가 많다. 한화시스템 한 직원은 “최근 내부 조사에 응한 직원 500여명 중 83% 정도는 이전을 원했고, 그중 대구가 60%, 어디든 이전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20%였다”면서 “현재 공장은 주변 인프라도 부실하고 어차피 리모델링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