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나 대신 이불 빨아주니 정말 고맙소"

서울시 이동식 이불빨래방, 어르신·장애인 만족도 높아

입력 : 2017-06-19 오후 4:16:23
[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어제 밤에 이불버스 온 거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나왔잖소.” 지난 15일 오전 9시쯤 서울 양천구 목동현대아파트 107동 앞, 전날 미리 주차한 육중한 7톤 짜리 이동빨래차량이 시동을 걸자 조용한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서 어르신들이 저마다 보자기 한보따리씩 메고 등장했다.
 
이날은 목동현대아파트의 65세 이상 홀몸어르신과 중증 1~3급 장애인들 이불 빨래하는 날로 사전에 관리사무소에 협조를 얻어 이동빨래차량 공간을 확보하고 수도를 연결했다. 어르신이나 장애인은 몸이 불편해 온종일 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일이 많은데 이불을 제때 빨지 못하는 사이 세균과 먼지가 쌓여 호흡기·피부 질환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 단지는 홀몸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로 간혹 거동이 불편해 보행기나 전동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경비나 이웃과 함께 이불을 가져오는 어르신도 눈에 띄었다. 아침 햇살조차 꽤나 따사로운 계절이지만, 어르신들이 가져온 이불의 60% 가량은 차렵이불도 아닌 두꺼운 겨울이불이다.
 
최막순(73·여) 어르신은 “이제는 힘이 없어 겨울이불을 아직도 못 빨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매번 뽀송뽀송 잘 빨아주니 언제 오나 기다리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이동빨래차량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 1명과 기사 1명이 가져온 이불 수와 인적사항을 적느라 손이 모자라자 뒤쪽에 밀린 인원들은 최막순 어르신이 나서서 자연스레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이불빨래차량 안은 무려 20kg 들이 ‘최신형컴퓨터세탁기’와 건조기가 각각 3대씩 놓였으며, 이들 기기의 동시가동을 위한 펌프모터와 발전기도 갖췄다. 하루 평균 17세대 안팎을 받는데 1세대당 3채 가량의 이불을 가져오다보니 하루에만 세제 4.65ℓ 들이 1통, 섬유유연제 3.1ℓ 들이 1통을 뚝딱 해치운다.
 
자동 기능을 이용하면 헹굼~탈수 등의 세탁과정이 1시간이면 끝나지만, 이불빨래차량 운영인력들은 보다 세탁 성능을 높이고 시간을 줄여 한 집이라도 이불을 더 빨고자 일일이 수동으로 조작했다. 어차피 빨래야 세탁기가 한다지만, 화재를 예방하려면 건조기 등을 1일 1회 이상 구석구석 청소해야 하고, 너무 낡은 이불은 미리 준비한 새 이불로 교체해 주며, 회수 과정에서도 서로 섞이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이들의 고생에 마음이 쓰였는지 몇몇 어르신은 빵, 두유, 커피 등을 가져와 “더운 날 고생이 많다”며 정을 나눴다. 이윽고 해가 중천을 지나 오후가 되면서 섬유유연제 향기 풍기는 깨끗한 이불이 하나 둘 나왔고, 그늘에 앉아 기다리던 어르신들은 새로 단장한 이불을 가슴에 안고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김동담(85·여) 어르신은 “몇 년 전까진 이불을 발로 밟고 널 수 있었는데 이젠 기력이 없어 꿈도 못 꾼다”며 “오늘 이렇게 깨끗하게 빨아주니 참말로 고맙소”라고 말했다. 이날 빨래한 이불은 평소보다 많은 24세대의 63채로 이렇게 하루하루 임대아파트와 복지관, 주민센터 등을 다니며 빨래한 이불만 한 해 2715세대, 7293채(지난해 기준)에 달한다.
 
현재 수도 동파 문제로 겨울철을 제외한 3~12월에만 운영 중인 이동식 이불 빨래는 동절기 장비를 보강해 수요가 많은 겨울철에도 가동할 예정이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으로 시작한 이동식 이불 빨래 사업은 연간 1억여원에 불과한 예산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장애인들에게 큰 만족도를 제공하고 있다.
 
박대한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조금 힘들긴 해도 깨끗해진 이불을 받아 돌아가는 어르신·장애인의 만족도가 높아 하루하루 기운을 내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장애인에게 이불 빨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목동현대아파트에서 홀몸어르신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동식 이불빨래방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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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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