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선지 한 달이 넘었다.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 한국사회 곳곳에서 눈부신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불통의 구중궁궐로 불리던 청와대는 소통과 개방의 장소로, 권위의 상징이었던 제왕적 대통령은 휴머니즘이 물씬 풍기는 탈권위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주 우리의 발걸음은 결코 경쾌하지 않았다.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인사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그간 우리 사회의 ‘잘난 놈’들이 얼마나 불법을 자행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민낯 그 자체였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그들은 모두 오점투성이였다. 출세한 자들의 과거는 모두 이 지경이란 말인가. 아니면 출세를 위해선 이러한 경로를 걸어야만 했던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앞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어디 그뿐이던가. 새 정부가 시작한 검찰개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사들을 쳐내는 데는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지만 그래도 여전히 탄식은 따른다. 이전 정부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몰락한 검사들의 행적을 보면, 그저 그들의 일로만 보여 지지 않는다. 소위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엘리트 지도자들은 저런 비굴한 경로를 통해 더 높은 곳을 향해 갔더란 말인가.
한국사회가 말하는 성공가도는 권력을 등에 업고 불법을 자행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성공의 개념은 이제 다시 쓸 필요가 있다. 불법을 자행해도 권력과 돈만 손에 넣으면 성공한 자라고 부러워하는 우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인생의 성공은 고시를 합격하고 권력에 줄을 서 검사장에 오르고 검찰총장이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승승장구하며 높이 올라가는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선망해 왔다. 이제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진짜 성공은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다 인생의 말로에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자일 게다. 일명 ‘우병우 사단’이라고 불린 윤갑근, 정점식, 김진모, 전현준 4명의 엘리트 검사의 부끄러운 말로를 보며 우리 국민은 한국 사회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엘리트의 개념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 보았을 것이다.
우리와 달리 지난주 파리에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감동의 휴먼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 주인공은 다비드 퓌자다스(David Pujadas). 52세인 퓌자다스는 한길을 오롯이 걸어온 기자다. 1989년 민영방송인 TF1에 입사해 10여 년간 일했고 2001년 공영방송인 프랑스 2TV로 옮겨 8시 뉴스를 16년 간 진행하며 프랑스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이런 그가 지난 8일 밤 8시 뉴스를 마지막으로 고별인사를 했다. 이 마지막 방송에는 퓌자다스의 노부모가 직접 참여해 아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감동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뉴스를 지켜본 700만 프랑스 시청자들이 퓌자다스의 작별 인사에 가슴 뭉클해 했으며 그의 동료인 마르크 올리비에 포지엘은 트위터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퓌자다스의 질 높은 기자로서의 활동에 경의를 표했다. 뒤이어 그와 함께 일했던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인들(드니 브로니아르, 로랑스 페라리, 마리 뒤르케르, 파비앙 나미아스)도 뜨거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하루 종일 프랑스 언론인들은 퓌자다스의 프로 정신에 끊임없는 찬사를 보냈다. 또한 수년간 최대의 라이벌로 지낸 민영방송 TF1의 질 블로(Gilles Bouleau)마저 페어플레이 정신을 발휘해 그가 진행하는 밤 8시 뉴스의 한 꼭지로 퓌자다스가 프랑스 2TV 뉴스 진행을 마친 것을 보도하며 경의를 표했다. “오늘 밤 특별히 퓌자다스를 생각한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한 기자가 자기가 애정을 갖고 진행해온 정든 프로그램을 마칠 때 부모를 비롯해 언론계 동료 기자들과 시청자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비록 프랑스 2TV의 델핀 에르노트(Delphine Ernotte) 사장이 마크롱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퓌자다스 기자를 축출했다 할지라도 그의 인생은 결코 불명예가 아닌 성공의 꽃다발 속에 파묻혔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장관 후보들의 이력에 나타난 오점과 권력에 줄을 서 옷을 벗는 4명의 일그러진 검사들의 말로를 보며 한국 사회의 성공의 방정식이 그간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우리는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정상에만 오르면 모든 걸 독식하는 한국 문화가 낳은 병폐가 이제는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요즘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번에야 말로 이런 적폐가 청산되길 간절히 원하지만 그들을 동정하거나 감싸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며 희망은 여지없이 사라지고 있다.
부패한 정권을 시민이 몰아냈듯이 적폐 청산도 정부가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뤄내야 할지 모른다. 정치권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나친 낙관일 것이다. 이제 국민이 나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정리하고 성공의 새로운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물불 안 가리고 권력과 돈을 쟁취한 자들을 부러워하기보다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자기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라. 이런 의미에서 결격사유가 있는 장관 후보들은 여론이 단호히 처리해야 한다. 한국도 프랑스처럼 한 사회적 인사가 몸담았던 일터를 떠날 때 모두의 찬사를 받는 멋진 문화를 만들어 보자. 촛불 혁명의 주역인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감성보단 이성으로 행동해야 함을 잊지 말자.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