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아듀, 과잉 학력사회

입력 : 2017-06-20 오전 6:00:00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어느 정부 하에서도 박수를 받으며 끝나기는 힘든 모양이다. 흠결이 많은 인사들이 나와 시시비비를 다투고 사회를 시끄럽게 해도 결국은 임명되고 마니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이런 개운치 않은 인사청문회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후보자들의 논문 표절 문제다. 프랑스 위키피디아에서 표절(plagiat)을 찾아보면 ‘도덕, 혹은 민법상, 아니면 상업상의 질서를 위반한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 질서를 위반하면 벌을 받는다. 이 위반은 의도적이거나 과실로 남의 작품을 베끼거나, 어느 모델에서 아주 강하게 영감을 얻음으로써 발생한다. 이는 자주 무형적 도둑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도둑으로까지 간주되는 표절 시비에서 교육부 장관 후보자마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의 기저에는 한국의 교육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교육은 그간 암기 위주이거나 남을 모방하는 데 급급했다. 창의적인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베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은 고급 디플로마(학위)를 소지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과잉 학력 사회를 부추겼다. 대학은 교육의 장이라기보다 학위 장사하는 사업장으로 변한지 오래다. 파산을 면하기 위해 재단들은 특수대학원을 만들고 학생 모으기에 혈안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학생들은 피땀 흘려 자기 이론을 만들며 논문을 쓰기보다는 뚝딱 짜깁기 하여 학위 따는데 급급하다. 한국의 모든 학교가 그렇다고 매도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특수대학원에서 이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니다. 이렇게 딴 학위를 가지고 어떤 이들은 대학의 초빙 강사나 겸임교수, 나아가 정계로 진출한다.
 
요즘 인사 청문회에서 거의 모든 장관 후보자들이 논문 표절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이러한 병폐의 흔적이다. 한국의 디플로마 사회는 학위를 가진 고학력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과연 그들이 진정한 고학력자인지는 따져봐야 하는 심각한 의문을 남긴다.
 
프랑스도 물론 고학력 사회다. 그러나 한국만큼은 심각하지 않다. 장관 후보자가 논문 표절 시비에 휩싸여 프랑스 사회를 시끄럽게 하거나 낙마한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학 입학 자격시험부터 우리와 다르다. 철학 시험이 필수인 바깔로레아(논술형 대입자격, 줄여서 ‘박’이라 부름)는 통과가 꽤 까다롭다. 이 시험은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시작되었고 올해는 지난 15일 시작되어 일주일 간 진행된다. 72만 명에 이르는 지원생들의 나이는 13~74세까지 다양하며 시험은 전세계 91개국에서 진행된다. 첫 번째 시험은 철학 시험으로 4시간 동안 치러야 한다. 이번 입시에서 철학 시험은 홉스, 푸코, 루소에 대해 6개의 주제가 출제되었다.
 
프랑스의 유명인들 중에는 박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 중 거물급 정치인들도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인 1992~93년 수상을 지낸 피에르 베레고부아는 우크라이나 이민자의 아들로 프랑스 북서부 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독히 가난해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6세에 금속 노동자로 일을 시작해 프랑스 국영철도회사에서 일하면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함으로써 정치인이 되었고 급기야 수상이 되었다. 세계의 대문호인 앙드레 말로 또한 박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르 드골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나는 고발한다’로 드레퓌스 사건을 폭로한 프랑스 최고의 지성 에밀 졸라 또한 박이 없다. 그는 시험에서 두 번 떨어지고 포기했다. 최근의 정치인들 중에도 박이 없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국회의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장 루이 드브레가 그 주인공이다. 공화당의 거물급 정치인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지, 현 공화당 대표 크리스티앙 자코브도 박이 없다.
 
어디 정치인만 그러한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텔레비전의 진행자인 장 피에르 페르노, ‘텔레비전의 왕자’로 불리며 프랑스인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미셸 뒤르케르, 유명 영화배우 알랭 들롱, 제라르 드 빠르디유, 오마르 시, 축구에서 성공신화의 아이콘이 된 지네딘 지단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박이 없지만 그들의 전문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는 모든 것을 디플로마로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학력을 제일주의로 삼다보니 양심을 속이고 표절을 일삼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악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학력보다는 능력으로 승부를 걸게 하는 실속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질소포장 과자’ 같다. 봉지를 뜯으면 질소는 날아가고 과자는 한줌 밖에 남지 않는 과대포장·과대선전 사회. 이것이 한국의 고학력 사회의 현 주소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이 같은 적폐를 청산하고 솔직 담백한 사회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거짓보다 양심을 최고로 치는 사회, 디플로마보다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자. 새 정부의 교육 개혁이 이러한 문화를 형성하는데 진정으로 일조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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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