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대미 무역전선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미국이 한미FTA 개정협상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내 산업계의 수심이 깊어졌다. 한미 협상에서 기본적인 미국의 우위를 감안하면 방어선이 한참 밀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탄핵 발의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까지 더해지면서 통상압박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미국의 표적이 되고 있는 자동차, 철강을 비롯해 기계, 전기전자, 석유화학 등 전 산업군이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정부가 12일(현지시간)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소집을 요구하자, 산업계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간 불공정 무역 사례로 꼽은 자동차와 철강에 논의가 집중될 전망으로, 해당 업계는 일단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미 양국은 상호 교역 파트너로서 FTA 체결 후 교역이 확대됐고 앞으로 상호 윈윈을 위해 양국 통상 및 산업부문 강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원산지 규정에 대한 협상을 요구할 것 같고, 우리도 미국이 과도하게 반덤핑 제소를 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며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개정협의가 시작되고 8월 이후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본 다음에 전망이나 대응 윤곽 등이 잡힐 것 같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반면 무역통상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타격 수준은 보다 수위가 높다. 한국의 대미 흑자가 높은 자동차, 철강을 비롯해 기계, 전기전자 등에 대한 통상압박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다. 무엇보다 대미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품목은 25% 정도인 자동차다. 무역수지 흑자규모 면에서도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은 개정협상의 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에서 자동차 수입관세 2.5%가 부활할 경우 현대·기아차의 가격 인상으로 미국 브랜드 대비 경쟁열위가 불가피하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도 한미FTA를 수정해 수출제조업의 관세철폐를 중단하거나 관세증대가 실현될 경우 손실이 가장 큰 산업으로 자동차를 꼽았다.
철강은 이미 반덤핑·상계관세 제소 증가로 어려움에 처했다. 지난 3월 포스코 후판에 11.7%의 반덤핑·상계관세를 적용했으며 4월에는 넥스틸과 현대제철 유정용 강관에 각각 24.9%와 13.8%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다. 이로 인해 대미 수출은 올 들어 5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30% 줄었다. 이번 협상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철강산업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미 러스트벨트 지역의 주력산업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철강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는지 조사를 지시했다. 기계산업 역시 2012년 이후 대미 무역수지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지난해 20억달러를 초과하는 등 개정협상의 타깃이 될 수 있다. 현재 0% 수준인 관세율은 한미FTA 체결 이전 1.7%였다.
전기전자 업종 역시 대미 수출 비중이 높다. 다만, 주력 수출 품목인 휴대폰 및 부품, 반도체는 FTA 양허 없이 무관세 품목으로 한숨을 돌려도 된다. 반면 가전의 대부분은 양허품목이다. 무역적자가 높고 대부분의 경쟁사가 미국브랜드인 냉장고, 세탁기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세탁기는 이미 미국에서 반덤핑 제소 분쟁을 겪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은 대미 수출 비중이 미미(5%수준)하고, 제조업 중 예외적으로 대미 무역수지 적자가 나타나고 있다. 철강과 더불어 자동차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본소재의 특성상 자동차 산업의 무역규제가 심화될 경우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산업별 수출손실은 결국 국내 고용, 부가가치 감소로 이어진다. 수출산업이 둔화되는 연쇄 작용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대부분의 산업이 영향권에 접어들 전망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단기적 영향은 업종별로 제각각이겠지만 넓은 범위에서 타격은 예외가 없다”며 “우리도 제대로 주장해서 얻을 건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