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2일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자 재계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겉으로는 공감을 표하지만, 늘어난 세 부담에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발을 하기도 어렵다. 출범 초기인 정부에 대한 눈치와 함께 조세형평성과 경제민주화 등을 바라는 여론도 살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정경유착의 홍역도 가시지 않아 반대의 명분도 약하다. 말 그대로 '속앓이'다.
정부는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법인세율 최고 25%를 적용키로 했다. 자료/기획재정부
주요 경제단체들은 이날 정부 발표 직후 논평을 내고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세제개편안은 일자리, 소득주도 성장 등 새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잘 뒷받침하고 있다"며 "국가의 개혁 과제들을 뒷받침하려면 재원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에 경제계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향후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법인세율 인상 등 증세 방안들에 대한 결론을 도출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필요재원, 세입부족 등 현실적 문제를 앞에 놓고 예산 절감, 다른 세목, 다른 재원 확충 수단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등 깊이 있는 논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일자리 창출, 소득재분배라는 국정과제를 충실히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국내 일부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의 경제성장률 하향 전망 등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인 만큼 향후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 글로벌 조세 경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와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에 제동을 걸다 역풍을 맞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일제히 환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부의 세법개정안 발표를 환영하며, 향후 우리경제의 일자리 확대와 양극화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신설된 '고용증대세제'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과 다른 고용·투자 지원 제도와의 중복적용을 허용해, 보다 많은 중소기업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을 제외한 개별 그룹들은 입장 표명 자체를 삼갔다. 법인세 인상이 예상됐지만, 정작 현실화되자 늘어난 세 부담을 다시 계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익명을 요구한 A그룹 관계자는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최저임금도 오르고, 일자리 창출의 부담까지 느끼는 상황"이라며 "법인세까지 인상되면 원청의 고정비가 인상돼 비용절감에 대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곧 정부의 또 다른 역점사업인 "2·3차 협력사에 대한 상생 확대를 어렵게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B그룹 관계자도 "글로벌 흐름이 법인세를 내리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역으로 가고 있다“며 "대기업들의 경쟁력 하락은 물론이고, 늘어난 세 부담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면 투자와 일자리 확대 모두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화가 강세고,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도 강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대책이 안 선다"고 한숨지었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보면,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구간을 신설해 법인세율 최고 25%를 적용한다. 현재 법인세율은 ▲과표 0∼2억원 10% ▲과표 2억∼200억원 20% ▲과표 200억원 초과 22% 등 총 3구간으로 나눠 적용되고 있다. 개정안은 '2000억원 초과'를 신설하고, 세율을 기존 최고세율보다 3%포인트 높게 적용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지난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5%에서 22%로 인하한 뒤 올해까지 유지돼 왔다. 이른바 '부자감세'다. 법인세 최고세율 자체가 오른 것은 1990년 30%(비상장 대기업은 33%)에서 34%로 올린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법인세 인상의 부담은 일부 대기업에 집중될 전망이다. 지난해 신고기준 과표 2000억원 초과 법인 수는 129개로, 전체 64만5000개의 0.02%에 불과하다. 나머지 과표구간의 세율이 동일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000억원 초과 법인들만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법인세 인상으로 정부가 추가로 거둬들일 세수는 연간 2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5년 법인세 납부액을 기준으로 새 과표구간 25%를 적용하면, 삼성전자는 기존 3조2167억원에서 4327억원을 더 부담하게 된다. SK하이닉스도 9808억원에서 추가로 1278억원의 법인세를 더 내야 한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에만 3조3600억원의 법인세를 냈다.
여기에 그간 대기업에 집중됐던 각종 세액공제도 대폭 축소돼 실효세율 측면에서도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개정안은 일부 감면 대상이었던 연구개발(R&D) 비용과 설비투자액의 세액공제 등을 대폭 줄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금 여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율을 종전 수준으로 환원하자는 것"이라며 "현재의 경제 여건, 파급 효과, 과세 형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