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제가 입사할 때 사수셨던 선배가 있는데 그분 별명이 ‘박지성’이에요. 박지성 투입에 따라 공격의 날카로움, 수비의 안정감이 생기던 것처럼 선배가 인볼브될 때와 그렇지 않을때 업무 진행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죠.”<박지영(가명, 30세) L생활용품기업 과장>
“언제부터인가 대표께서 의도적으로 팀장들이 아닌 각 부서 차석 또는 차차석들만 따로 모아 회의를 하실 때가 있습니다. 부서 내 돌아가는 보다 세부적이고 생생한 사항들은 팀장보다 그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이 이유겠지요.”<조명룡(가명, 36세) C엔터테인먼트기업 과장>
신간 ‘링커십’의 저자이자 콘텐츠 프로바이더 그룹 낭만공작소 신인철 대표는 오늘날 기업에서 활약하는 ‘링커’들의 활약에 주목한다. 링커는 글자 그대로 ‘링크Link)’하는 ‘사람(-er)’으로 리더와 팔로워 사이에서 소통하며 조직의 ‘허리’를 담당하는 이들이라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아직까지 그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통일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고참급 대리부터 차장까지, 1970~1980년 초중반 세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기준으로 추산하면 현재 국내의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단체 등에 종사하는 링커들은 공식적으로 700만명 수준에 이른다. 그들은 앞서 두 과장의 인터뷰에서럼 조직원들을 매개하며 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키맨’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링커란 역할이 부각되기 전까지 조직 세계를 틀어쥐던 주체는 소수 리더들이었다. 이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대표를 선출해 온 인류의 ‘본능적 행동’에 기인한다. 1인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실어주고 의지하고 따르는 본능은 2000년이 넘는 역사 내내 존속됐다. 저자는 여우떼를 몰아내기 위해 리더부터 선출했던 켈트족의 사례부터 오늘날 대학생들이 팀 프로젝트를 위해 대표를 선출하는 움직임까지 살피며 설명한다.
2000년대 초부터는 리더에 집중돼 있던 관심이 팔로워들에게로 분산되기도 했다. ‘올바른 리더를 만드는 힘’이 결국은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서 나온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1985년 왓튼스쿨 출신으로 구성된 미 휴스턴의 에너지회사가 몰락한 경우나 우리나라 엘리트들의 집합소였던 율산 그룹이 공중분해 된 사례를 보면 최고의 리더십과 팔로우십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부분들도 충분히 있다.
저자는 “수 천 년간 집착해 왔던 리더십과 짧은 기간 강한 인식을 남긴 팔로워십, 두 가지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최상의 성과를 낼 것으로 믿어왔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실제로 중요한 ‘다른 어떤 한 녀석’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걸 대부분의 조직들은 잊고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링커들이다.
책은 99명의 현직 근로자 인터뷰와 다양한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오늘날 링커의 현주소를 짚고 올바른 링커십의 필요성을 설명해나가는데 주안을 둔다.
“사실 누가 (링커십) 교육을 받고 싶겠어요? 요즘 직원들은 사원 벗어나면 바로 임원 바라보고 사는데 ‘너 링커니까, 링커십 배워야 돼’ 그러면 아마 콧방귀도 안 뀌고 다 집에 가버릴걸요?”<최혁선(가명, 38세), L전자 책임연구원>
특히 현직 근로자들의 입을 빌려 아직까지 대부분의 조직에서 그들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모습을 짚어주는 부분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자신의 권위를 위협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협한 일부 리더들(1958~1974년 생인 베이비부머 세대)이나 자기 주장이 강한 후배들(1980년 중반 이후인 베이비버스터 세대)에 끼여 자신의 주장을 삭여야만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링커십에 부정적인 그들이 절로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저자는 그럼에도 링커들이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직의 허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해내면 조직 뿐 아니라 링커 자신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조직과 리더에 무한한 신뢰와 헌신을 보태며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두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람 이매뉴얼이나 경영자가 되기 전까지 철이 만들어 지는 과정부터 현장 일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훌륭한 링커 시절을 보낸 이구택 포스코 회장 등을 사례로 든다.
‘능수능란한 경청’의 자세, ‘지속적인 배움’의 실천, ‘지식중계자’로서의 역할 등을 올바른 링커가 되기 위한 원칙들로 내세우는 부분도 살펴볼만한 부분이다. ‘맥주 정상회담’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경청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혜, 보조 지휘자들의 활약이 뛰어났던 히사이시조의 25주년 공연 등의 이야기가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한다.
그는 “영국 농민 봉기였던 ‘와트 타일러의 난’이 제2, 제3의 리더를 만들어 놓지 않았기에 실패했음을 알게 돼 그때부터 링커의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링커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리더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일임하면 조직 전체는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링커십. 사진제공=한스미디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