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 이야기를 다룬 '군함도'로 뜨겁다. 일본에 의해 철저히 묻혔던 역사적 진실을 끄집어냈다는 평가와 지나친 애국심을 고취해 '국뽕 영화', 또 '친일 영화'라는 비판이 교차해 들린다. 분명한 것은 영상으로 수백만명에게 강제징용이라는 말을 환기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일제 만행에 다시 한번 분노했고 일본은 관방장관까지 나서 이미 강제징용 피해자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주장하며 진화에 나섰다. 우리 정부도 제72회 광복절을 맞아 15일 보신각에서 열리는 기념 타종행사에 실제 군함도 노역에 강제 동원됐다가 생환한 이인우씨와 소설 '군함도'를 집필한 한수산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등을 타종자로 초대해 영화가 준 의미를 되새기기로 했다.
영화와 초청 행사도 중요하지만, 더 깊이 생각할 문제가 있다. 지난주 법조계에서도 군함도 관련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실제 피해자들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2~3차 손해배상에서 잇달아 승소했다. 지난 8일 김영옥 할머니와 고 최정례 씨의 조카며느리 이경자씨가 1심에서 일부 승소했고 11일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1심에서 이겼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국적으로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 상대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총 14건에 이르지만,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된 건이 없다. 11일 판결의 경우 무려 3년 6개월이 걸려 나온 결과다. 광주와 전남 지역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등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1차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1, 2심 모두 원고 승소했지만, 여전히 대법원 계류 중이다. 소송에 비협조적인 미쓰비시의 의도적인 시간 끌기 탓이다.
미쓰비시의 경우처럼 일본기업이나 정부는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피해자가 없는 하늘 아래 진실도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데 이들의 눈에 보이는 의도를 더는 두고 봐서는 안 된다. 법원에서도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 소송에 미온적인 일본 측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 할머니가 향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16살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뒤 3년간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한 김 할머니는 결국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김 할머니 별세로 이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37명만 남았다. 휠체어에 앉아 진실을 울부짖고 일본의 참된 반성을 촉구하는 할머니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날 때마다 정작 가해자는 미소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광연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