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록 성지’였던 펜타포트…관객수 줄었지만 12년 관록 빛났다

입력 : 2017-08-17 오후 9:30:01
[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안녕하세요! 재밌어요? 한번 놀아볼까?(관객들: 네!) 제대로 놀아볼까!!!(관객들: 악!!!)”
 
미국 록밴드 DNCE의 한국인 기타리스트 이진주가 소리치자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아래 거대한 서클존이 생겼다. 원은 점차 신명나게 달리는 이들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박수를 쳐주는 이들로 분산되며 커졌다.
 
펜타포트 펜스 앞에서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 모습. 사진/예스컴
 
어떤 이들은 하늘을 향해 물을 뿌리며 희열을 느끼고 어떤 이들은 팔을 위아래로 흔드는 스캥킹으로 흥을 마음껏 발산한다. 이윽고 앰프에서 강렬한 전자 기타음이 터져 나오자 삽시간에 구심점으로 미친 듯이 향하는 사람들, 무아지경의 슬램(몸을 강렬하게 부딪히는 행동)판이 벌어진다.
 
지난 11일부터 3일간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1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은 이 하나의 그림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었다. 3일간 수십, 수백번도 넘는 둥그런 원형이 그려졌고 수백,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몸을 맞부딪치며 짜릿함을 느꼈다. 시시 때때로 쏟아지는 비와 30도가 넘는 폭염이 반복되는 짜증나는 날씨도 관객들의 흥을 멈출 수는 없었다.
 
비가 올 땐 형형색색의 우비와 장화로 무장하고 진흙탕으로 뛰어 들어가거나 무더위 땐 하늘로 향했다가 분수처럼 떨어지는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았다. 오락가락한 날씨 속에 종종 뜨던 무지개는 모든 한을 토해낸 관객을 위한 선물처럼 방긋 웃었다. 그렇게 펜타포트는 올해도 유감없이 그곳이 바로 ‘록의 성지’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었다.
 
국내 록밴드 피아의 무대 도중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아 올리자 무지개가 떠올랐다. 사진/예스컴
 
◇ 강렬했던 DNCE…베이스 따위? 부서져도 좋다
 
올해 펜타포트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팀을 꼽자면 단연 DNCE였다. 12일 오후 6시 무대에 올랐던 이들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DNCE’ 깃발을 흔드는 스텝 두 명 사이로 전동 카트 한 대가 무대 위로 질주했다. 이윽고 카트 안에서 튀어 나오는 사자탈을 쓴 4명. 팔을 하늘로 번쩍 들고 호응을 유도하자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을 쏟아냈다.
 
곧이어 탈을 벗고 악기를 둘러멘 이들은 ‘네이키드(Naked)’로 포문을 열었다. 댄서블한 전자음에 강력한 드럼비트와 전자기타로 무장한 이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자 시작부터 관객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우린 미국에서 왔습니다. 당신들 좋습니다. 계속되는 파티 즐겨주세요” 프론트맨 조 조나스가 멘트를 던진 후 이들은 ‘얼모스트(Almost)’, ‘바디 무브스(Body Moves)’, ‘투스브러쉬(Toothbrush)’ 등을 이어갔다. 베이시스트 콜 휘틀은 베이스를 연주하며 앞구르기를 했고 한국인 기타리스트 이진주는 무대를 종횡하며 펑키한 기운을 마음껏 발산했다. ‘키싱 스트레인져스(Kissing Strangers)’, ‘언스웨트(Unsweet)가 나올 때는 하늘을 가로 지르며 객석으로 물대포 분수가 떨어졌고 관객들은 흥을 놓칠세라 기차놀이를 했다.
 
DNCE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말미에 있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웁스 아이 디드 어게인(Oops!... I Did It Again)’을 포함한 팝 메들리를 들려주며 끝까지 흥을 돋구었다. 물구나무를 서며 허공을 향해 발을 차대거나 혀를 내밀며 기어가는 퍼포먼스를 벌이던 휘틀은 결국 마지막에 베이스를 공중에 흔들어 대다가 부서뜨리기까지 했다. 그가 베이스 넥을 추켜들자 프레디 머큐리의 ‘위 아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이 흘렀다. 관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의 ‘록 스피릿’에 일제히 경의를 표했다.
 
한국인 여성 기타리스트 이진주가 맴버로 속한 4인 미국 혼성 팝 밴드 DNCE(조 조나스·잭 로우리스·이진주·콜 휘틀). 사진/뉴시스
 
◇ 밴드색 짙은 EDM 군단들, 록페서 빛 발하다
 
DNCE가 지핀 열기는 마지막 날인 13일 저녁 메인무대에 선 이디오테잎, 저스티스의 무대에서 폭발하고야 말았다. 두 팀은 굳이 장르라는 잣대를 들이밀자면 일렉트로닉댄스음악(EDM)의 갈래에 속하지만 드럼 비트 등 밴드적 사운드에 무게 중심을 두는 ‘하드한 음악’을 한다.
 
그렇기에 지난달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를 헤드라이너로 세우며 ‘록페 정체성’ 논란에 시달렸던 ‘2017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밸리록)’과는 차별화가 있었다. 이날 록페라는 공간에서 각각 1시간여 동안 이들의 음악이 울려 퍼졌지만 관객들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하드록을 듣는 것처럼 더 흥분했고 더 잘 놀았다.
 
이날 이디오테잎은 ‘어몽 어 헌드레드 페이시스(Among a Hundred Faces)’를 시작으로 ‘보일링 포인트(Boiling Point)’, ‘디스토피안(Distopian)’ 등을 쉴새 없이 이어나갔다. 폭풍 같은 드러밍과 그에 상응하는 둔탁한 전자음들이 앰프에서 터져 나와 심장까지 파고들자 관객들은 이미 이성을 잃고 슬램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븐 플로어(Even Floor)’가 흘러나올 때는 전자음을 따라내는 ‘빠빠빠빠’를 다함께 외치는가 하면, ‘멜로디(Melodie)’에 포함된 그들의 유일한 가사 ‘디스 이즈 록앤롤(This is Rock ‘N’ Roll)’을 모두 따라 외치며 소용돌이처럼 열기를 쏟아냈다. 수십번의 서클존이 형성되는 동안 관객들은 서로 미친 듯이 몸을 부딪히며 놀면서도 음악이 멈출 땐 “핸드폰”, “핸드폰”, “모자”, “모자” 하면서 서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매너십도 발휘했다.
 
이디오테잎의 무대가 절정에 달할 무렵 관객들이 서클을 형성하고 신나게 즐기고 있다. 사진/예스컴
 
그들의 무대가 끝난 후 오른 마지막 헤드라이너 저스티스는 무대의 위용이 압도적이었다. 검은 직사각형 모양의 36대 마셜 기타 앰프와 빛을 뿜어대는 십자가 형상, 찬란하고 사납게 명멸하는 조명이 뒤범벅대며 그 어떤 록 스타들보다도 ‘센’ 순간을 빚어냈다.
 
‘세이프 앤 사운드(Safe and Sound)’에서부터 시작된 밴드색 짙은 전자음악은 ‘댄스(D.A.N.C.E)’, ‘제네시스(Genesis)’, ‘스트레스(Stress)’ 등 11곡으로 이어졌고 송도는 춤과 슬램의 성지로 물들었다. 공연 말미 태극 문양을 형상화하는 파랑, 빨강색의 재킷을 입은 가스파르 아우게와 자비엘 드로즈네 두 사람이 조각상처럼 멈춰서는 퍼포먼스를 1분여간 벌이기도 했다. 굵은 장대비, 그의 노래를 열창하는 팬들, 명멸하던 십자가와 32개의 조명이 마지막까지 펜타포트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마지막날 헤드라이너를 장식한 저스티스. 사진/예스컴
 
◇ 관객수는 줄었지만 12년 관록 빛났다
 
최근 장르를 확대하는 대형 록페의 추세를 펜타포트도 조금은 수용하는 분위기다. 올해 라인업에도 자이언티, 형돈이와대준이, 찰리XCX와 두아 리파 등 EDM, 힙합, 팝까지 아우르는 시도를 꾀했다.
 
또 딥퍼플, 뮤즈, 트레비스, 언더월드, 콘, 들국화, 이승환, 서태지 등을 헤드라이너로 세웠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유난히 라인업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영향이 올해 관객수 감소에도 직간접적인 효과를 줬을 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주최사가 발표한 공식 자료에 따르면 날짜별 관객 수는 첫날 2만3000명, 둘째날 3만1000명, 셋째날 2만2000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총 8만60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만명 가량이 줄어든 규모다.
 
하지만 관객수가 다소 줄긴 했어도 운영진의 12년 관록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폭염 특보에도 응급차와 소방차,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었고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요원과 경찰, 경호원들이 항시 대기 하고 있었다. 무더위에 지친 관객들을 위해 공연 순간마다 살수차를 동원하는가 하면, 물을 공급하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하드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큰 틀의 콘셉트를 유지하며 펜타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운영진과 함께 12년 간 함께 해온 팬들도 이제는 매너 있게 노는 노하우를 안다. 과격한 슬램 도중 분실물을 찾아주는가 하면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대체로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켜가는 모습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페스티벌이 아름답고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번 펜타포트를 주관한 예스컴 관계자는 “라인업이 약하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올해도 미국의 이슈스나 일본 크리스탈 레이크, 국내 피아, 바세린 등을 무대에 세우며 하드한 펜타만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며 “내년에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겸비한 팀들과 발란스를 맞춰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관객이 줄어든 부분과 관련해서는 “서울에서 펼쳐지는 다른 페스티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며 “지하철역부터 페스티벌 입구까지 오는 교통적인 부분에서 관객들의 불편함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점이 있었는데 내년엔 그런 편의 시설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국내 대표 축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펜타포트 메인무대 모습. 사진/예스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