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 일제는 조선의 얼굴에 해당하는 남산에 가장 격이 높은 조선신궁을 세우고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숭배하게 했다. 조선 통치의 중추인 통감부를 세우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한 곳도 남산이었다. 남산은 나라를 잃고 국토와 주권을 내 주어야 했던 치욕의 장소이며 해방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설치돼 도합 100년 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가갈 수 없는 장소였다.
서울시는 100년 넘게 우리 민족과 격리된 채 역사적 흉터처럼 가려져 온 남산 예장자락 속 현장 1.7Km를 내년 8월까지 역사탐방길로 잇는다고 21일 밝혔다. 쓰라린 국권상실의 역사 현장을 시민이 직접 걸으며 치욕의 순간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자는 의미로 ‘국치길’이라 이름 붙였다.
국치길 1.7Km는 ‘ㄱ’자 모양의 로고를 따라 이어진다. ‘ㄱ’ 안쪽에 ‘국치길 19101945’를 함께 넣어서 역사의 현장성과 시대의 의미를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시민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공공보도 위에 보도블럭 모듈로 설치한다.
코스는 병탄조약이 체결된 ‘한국통감관저터’를 시작으로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던진 ‘조선총독부’, 청일전쟁의 승전기념으로 일제가 세운 ‘갑오역기념비’, 일제가 조선에 들여온 종교 시설 ‘신사’와 ‘조선신궁’까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체로 시대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국치길 코스는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남산의 숨은 역사 조사결과를 토대로 역사 현장을 연계해 구성했다. 특히, 오랜 기간 감춰지고 잊혀져 온 이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국치길의 각 기점에 표지석을 세운다. 한국통감부이자 조선총독부가 위치했던 서울애니메이션 부지에 우선 설치할 계획이다. 재료는 역사의 파편을 재활용한다. 국세청 별관 자리의 건물을 허물며 나온 일제 조선총독부 산하 체신사업회관 건물지의 폐콘크리트 기둥을 가져와 쓸 예정이다.
조성 이후에는 역사문화해설사가 탐방로를 동행하며 남산의 역사, 문화,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현장을 직접 탐방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는 107년 전 병탄조약이 체결된 국치의 날이기도 한 22일 오후 3시에는 독립유공자들과 국치의 현장을 함께 걷는 역사탐방 행사도 개최한다. 행사에는 김구, 이회영, 윤봉길, 백정기, 장준하 등 독립유공자 후손 약 30여명이 함께 한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남산은 해방 이후에도 중앙정보부가 위치해 시민이 관심을 갖고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보니 이 곳의 역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며 “내년 8월 완성될 국치길이 역사의 아픈 상처를 시민들이 직접 느끼고 기억하며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22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 옛 통감관저 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독립유공자 등과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