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공익신고하면 패가망신 아닌 팔자 고친다고 인식해야"

한만수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 "법관 블랙리스트 수사는 사법 개혁 목적"

입력 : 2017-09-0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최근 법조계에서 불거진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앞서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지난 5월 말 관련자 3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이 단체의 한만수 상임대표는 8월 말 고발인 자격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한 대표는 사법 처리가 아닌 사법 개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동국대 국어국문 문예창작학부 교수인 한 대표는 학교의 비리를 비판하다 부당하게 해직당한 후 소송 끝에 복직했다. 해직과 소송, 복직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부고발자의 고통을 알게 됐고, 공익제보 활성화를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한만수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 사진/뉴스토마토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어떤 활동을 하는가
 
우선 내부공익제보자에 대한 긴급구조 사업을 진행한다. 긴급구조란 것은 생활구조와 법률구조를 포함한다. 공익제보한 사람의 대부분은 명예훼손, 기밀유출 등 거꾸로 법적 소송을 당한다. 두 번째로는 내부제보를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상담이다. 소송, 해임 등 상황을 알기 때문에 내부제보를 망설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현행 법 속에서 최대한 보호를 받으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해 상담을 한다. 세 번째로는 현행 공익제보자보호법이 상당히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내부제보실천운동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내부공익제보자가 거의 다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 단체가 9개월 만에 중요한 활동을 진행한 것은 이런 좋은 사람이 많이 모인 덕분이다. 이와 함께 우리 단체를 돕기 위한 시민이 모였고, 국정농단 사건이 내부제보에 의해 불붙었다는 시의성도 같이 작용했다.
 
단체를 설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내부공익제보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시민사회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동국대 교수회장을 역임할 때 총장 논문표절, 이사장 문화재 절도 혐의, 이사 등 비리를 항의하고 비판하다 해직을 당했다. 직접 내부고발을 한 사람도 아니고 내부고발이 들어올 때 대응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복직했다. 다른 사람은 잘못하면 5년, 10년씩 소송을 하기도 하는 것과 비교해 너무 명분이 없이 해직됐고, 좋은 변호사를 만나서 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실제 내부제보한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고, 내부공익제보 활동에 가세하게 됐다.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고발한 취지는
 
지금 이슈는 블랙리스트 실물이 컴퓨터 서버에 있느냐, 없느냐인데, 이번 고발은 사법적 처리가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블랙리스트가 서버 안에 있느냐가 아니라 일선 판사들이 그런 것이 있다고 믿고 있는 현상이다. 설문조사를 보면 있다고 믿는 있는 사람이 절대다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헌법을 어기고 있다고 많은 판사가 생각하면 이러한 생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지 조사를 거부하다니 말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양 대법원장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새 대법원장이 누가 되든 간에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전제를 하고, 이것을 없애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고발인 조사 당시 검찰의 늑장 수사란 지적도 제기했다
 
현재는 검찰이 법원보다 더 신뢰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검찰에 의뢰해 법원을 수사하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모순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다만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검사장이 취임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고, 그분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지검장이 취임하자마자 워낙 중요한 사건이 많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법 개혁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속도를 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늑장 수사란 표현이 됐다. 대법원장과 관련자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는 고위 공직자는 공직을 그만두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됐다. 이것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잘못이 적발돼 공직만 그만두면 그만이란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지난 1월 단체 출범 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내부제보자는 사실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내부제보한 다음에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면서 괜히 했다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해고당한 후 소송이 길어져 집안이 어려워졌다. 어떤 사람은 아파트 베란다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가까이 가면 "뛰어내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찻길에 뛰어들겠다는 충동이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함께 울어주면서 아파한 경험이 인상적이고 오래 못 잊을 기억이다. '마음의 위로가 절실하구나'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위로를 주기 위한 활동도 한다. 예를 들어 기타 레슨, 커피 내리기 등 취미활동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심리 치료를 시작했다.
 
반대로 그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상담을 하다 보면 애써 잊은 상처가 생각난다. 조직에서 힘든 것은 재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활동이 모두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손해배상금을 받은 일부를 내고, 시민이 돈을 내서 움직인 것이다. 단체가 초창기이다 보니 회원이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회비 마련이 제일 시급하다. 시민이 힘을 모아줘야 한다. 그래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재단이나 기금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단체 내에서 나눴다. 공익제보 자체도 희생인데, 공익제보자를 돕기 위한 단체도 희생으로만 이뤄지면 되겠는가.
 
관련 법안 제정 등 새 정부와 정치권에 바라는 점은
 
신생 단체이기 때문에 힘이 약하니까 여러 이웃 단체와 힘을 합해 단일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려고 한다. 도와주는 국회의원도 많이 있어서 공동발의로 발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신원 보호를 강화하는 부분이 포함된다. 한 기관에서 공익제보를 했는데 그 결과를 상사가 알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금지 법안이 있는데, 처벌이 만만치 않고 규정이 약하다. 그리고 보상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공익이 얼마만큼 증대되는지 측정을 하는 것이다. 공익은 증가했는데, 제보자는 피해를 보는 시스템은 바뀌어야 하지 않나. 공익신고에 의해 공익이 증대되면 당연히 신고자에게도 줘야 해고를 당해 소송을 하더라도 버틸 것 아닌가.
 
배신자 낙인 등 아직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제보자, 내부제보자를 고발자가 아니라 고자질쟁이라고 한다. 내부공익제보를 고자질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우리나라 근대사가 정당성 없는 공권력이 지배하던 시기라 그런 것이다. 고자질이란 용어를 보면 18세기 말에 나온다. 이때는 조선이 흔들릴 때이며, 사회가 흔들릴 때 고자질이란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는 고자질이 아니라 당연한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가 돼야 한다. 하지만 제도는 빨리 바꿀 수 있는데, 문화는 빨리 안 바뀐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은 공익신고를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앞으로는 팔자를 고친다고 바뀌어야 공익신고가 활성화되고 청렴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교육이 필요하다. 성인 교육은 공공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받게 되는 청렴 교육에 넣으면 된다. 어린이 교육은 국어나 사회 교과에 집필 기준으로 넣으면 된다. 내부고발을 고자질이라고 하는 슬픈 역사는 이제는 교정돼야 한다. 내부제보가 왜 중요하냐면 현대는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다.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다. 조직적이고 공익에 해를 끼치는 범죄는 내부에서밖에 모른다. 내부공익제보는 일종의 실패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실패한 사례가 훨씬 많은데 성공학만 있다. 실패학은 실패의 교훈을 반추하고 원인을 찾는 것이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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