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국회 인준 절차를 통과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대법원에 처음 출근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앞으로도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무엇보다 판사 사이에서 들끓고 있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가 우선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뒤 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김 대법원장에게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출근길이었다. 임명 절차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시종일관 김 원장이 정치편향적이라며 몰아 내세웠고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반대했다. 보고서 채택 마지막 날에 대거 불참했다.
문 대통령까지 나서 지난 17일 "사법부 새 수장 선임은 각 정당 간 이해관계로 미룰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요체인 입법·사법·행정 삼권분립 관점에서 봐 달라"며 읍소했다. 결국 나흘 뒤 10표 차로 본회의 투표 문턱을 겨우 넘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김이수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에 이어 헌정 사상 초유의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동시 공백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했다.
지명 31일 만에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김 원장은 이날 첫 출근길에서 "제가 대법원장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사법부 변화를 보여주지 않나 싶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그런 사법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여러 현안이 있는 것 잘 알고 있다"고 앞으로 의지를 밝혔다.
김 대법원장이 스스로 밝힌 '여러 현안'에는 대법원의 권한 축소나 사법행정권 남용 방지 등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전국 법관들의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풀어야 한다. 법원행정처가 지난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지시와 함께 이를 거부한 판사들을 부당 인사 조치했다는 그 의혹이다.
다행히 김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관련해 "그 부분도 지금 당장 급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먼저 이야기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잘 검토해서 국민이 걱정하지 않은 방향으로 해결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블랙리스트 실체에 대해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포부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성역 없는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토대를 열어주길 바란다. 그 길만이 스스로 언급했듯 김 대법원장 임명 자체가 사법부 변화를 말하는 것임을 국민은 인식할 것이다.
김광연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