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핵심정책으로 소득주도 성장론, 일종의 소득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소득정책을 경제 패러다임 구축정책으로 내세운 정부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반의 네덜란드 정부를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소득정책이 한국 경제를 구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진보 정권의 실험으로 끝나고 한국경제에 상처만 남길 것인가. 김동원 교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들어 본다.<편집자>
소득(임금)주도와 이윤주도 성장론의 차이점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분배 개선정책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중심정책으로 소득정책의 위상을 설정함으로써 앞서 소득정책을 주창해 왔던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나 국제노동기구(ILO)보다도 소득정책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임금주도 성장론은 기존 주류 경제학의 성장론을 이윤주도 성장론으로 규정하고 그 문제점을 비판함으로써 이론체계를 전개해 왔다. 두 체계의 핵심적 차이는 임금·투자·소득의 역할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임금은 생산주체의 비용인 동시에 근로자 가계 지출은 소비원천으로서 양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임금의 이중적인 역할 중에서 임금주도 성장론은 소비의 원천으로서 임금의 역할을 중시하는 반면 이윤주도 성장론은 생산자 비용측면의 임금의 역할을 중시한다.
임금의 어떤 역할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투자의 성격도 다르게 정의된다. 임금주도 성장론의 기본 틀은 임금 상승이 소비지출의 증가를 가져오고, 소비지출의 증가는 투자지출의 증가를 가져 옴으로써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는 소득의 내생변수가 된다.
반면 이윤주도 성장론에서는 투자는 기대수익률과 이자율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외생변수이며, 임금 상승은 소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투자의 기대수익률을 저하시키므로 투자를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소득 증가를 저해하는 작용을 한다.
임금주도 성장론의 장점은 임금 상승이 상당기간에 걸칠 경우 부채 증가를 수반하지 않고 소비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킴으로써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며, 임금 상승을 통해 소득을 지속적으로 상승함으로써 성장과 더불어 소득분배의 개선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임금 상승을 통한 소득 증가와 소득분배 개선, 이 두 가지 효과를 함께 거두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안정이 필수적이며, 금융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금융규제 강화가 요구된다. 반면에 이윤주도 성장론의 틀에서 임금 상승은 기업의 비용을 상승시켜 투자수요를 감소시켜, 소득 감소와 고용수준을 낮춤으로써 소득분배 상태를 보다 악화시키는 결과를 예상한다.
정부는 조세정책·복지정책·노동정책 등을 통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노동정책을 통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거나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높여 임금 인상을 제고하고 이에 따라 소득분배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핵심이다.
국내총생산(GDP)중 임금 비중의 증대는 단기에 총수요의 증대를 가져 오는 반면에, GDP중 이윤 비중의 증대는 총수요의 감소를 가져 온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임금비중의 증대는 투자지출의 증가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임금 인상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지속가능한 성장모델로서 성립한다. 문제는 과연 단기적으로 소비는 물론 장기적으로 투자를 증대시킬 수 있을 만큼 임금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소득분배 상태가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소득의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저소득층의 평균소비성향은 고소득층의 평균소비성향보다 높기 때문에 소득분배 상태가 개선될수록 소비가 증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조세 등으로 소득재분배 효과가 강화될수록 저소득층의 높은 한계소비성향으로 인하여 소비가 증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득정책 성공을 위한 조건과 그 한계
소득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임금 인상이 GDP 배분에서 임금의 비중을 높이자면, 고용이 최소한 감소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대응해 고용 규모를 더 이상 늘이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노동소득은 증대는 단기에 그칠 것이다.
따라서 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용 규모의 확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신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고용의 신축성 보장은 임금 인상에 대응한 기업의 고용 감소를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GDP상의 임금 비중의 확대를 가져오는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둘째, 소득정책 추진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 임금 인상은 상품의 수출경쟁력에 직결되므로 어느 한 나라만 소득정책을 추진하고 경쟁국은 그렇지 않을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수출경쟁력 약화로 인해 임금인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셋째, 금융시장에서 투기를 통한 부의 분배구조 악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임금주도성장은 과연 지속성장정책으로서 얼마나 효과적인 정책인가. 상기한 임금 상승을 통한 지속적인 소득 증대와 소득분배 개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의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
첫째, 소득정책을 통한 소득분배 개선이 과연 소비를 증대시키는 데 어느 정도 효과적인가. 미국 측의 검증 결과로는 소득재분배를 통한 소비 증대효과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나 복지제도의 개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저축을 통해 부의 축적을 도모하고자 하는 유인이 작용함으로써 소비 증대 효과는 약화된다는 것이다.
둘째, 임금 상승을 통해 지속적인 소득 증대와 소득분배 개선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또한 어느 정도의 임금 상승이 필요하며, 이 장기간의 지속적인 임금 상승을 기업들이 감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큰 경제의 경우 임금 상승의 소비 증대 효과가 상대적으로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지만, 총수요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중이 큰 경제의 경우 수출 가격경쟁력의 저하로 인해 임금 인상을 지속적으로 상당기간 추진하기 어렵다.
셋째, 임금 상승을 통해 단기적으로 경기회복이나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효과가 미약하다는 점은 임금주도 성장론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임금주도성장은 단기적으로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의 보완을 필요로 한다.
넷째,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금융 규제와 조세정책 등은 경제의 혁신촉진 시스템을 손상할 우려가 있다. 소득정책의 배경은 정부에 의한 소득 창출로 수요 부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소득정책의 추진과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최선의 조건은 수출호조로 수요부족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다.
문재인정부, 소득정책의 한계와 딜레마 극복 가능할까
문재인정부가 실시한 가장 주목되는 소득정책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16.4% 인상한 7530원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이명박 정부 2.8~6.1%, 박근혜 정부 7~8%였던 것과 비교할 때, 2018년 인상율 16.4%는 소득정책의 실시를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앞으로 2년 연속 16.4%씩 인상하면 2020년에는 1만202원으로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최저임금 1만원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2018년 16% 인상율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 고용노동부는 박근혜정부의 거의 유일한 노동개혁 성과인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조건 완화’ 양대 노동지침을 폐지했다. 노동지침의 폐기는 직접 임금인상은 아니나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소득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주도로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소득을 창출하겠다는 정책 역시 소득주도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문재인정부는 지난 7월25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혁신성장론’을 제시했다. 과도한 규제 등으로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이 저하돼 있기 때문에 생산성 중심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즉 수요측면에서는 일자리 중심과 소득주도 성장으로, 공급측면에서는 혁신성장을 추진해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사람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정책 구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지속성장 정책이 성공한다면, 최근 국제기구들이 주창하는 ‘관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될 것이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경제 시스템이야말로 시장경제체제가 간절히 소망해 왔으나 이루지 못했던 이상이다. 혁신주도 경제의 성장 엔진은 혁신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며, 문제는 이 보상체계가 소득정책이나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경쟁제한 정책들과 상충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광범위하고도 세밀한 규모의존 규제로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업을 보호해 왔기 때문에 이 상충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우려가 크다. 대표적인 문제가 앞서 지적한 최저임금인상 문제다.
혁신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업자들의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일 수 있다면,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인상할 수 있고 따라서 소득정책과 혁신주도 경제는 선순환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현실이 이러한 선순환 조건과 거리가 멀다는 점은 더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득주도 경제와 혁신주도 경제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주고, 그 결과로 시장 내부의 경제활동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있다. 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경제기구들이 양극화 문제에 대해 문재인정부와 같은 적극적인 ‘임금주도-소득주도 정책’을 권유하지 않고 기껏 ‘관용적 성장 정책’을 권고하는데 그쳤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는 어떤 나라의 정부도 피한 적이 없는 이 상충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 상충과 한계 극복이 어렵게 된다면, 과연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저성장 함정 극복위한 구조개혁 절실
양극화와 소득분배의 개선을 위한 소득정책은 분배개선뿐만 아니라 지속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소득정책이 양극화와 분배개선을 위한 보정정책의 차원을 넘어, 성장정책의 프레임으로 추진하는 것은 성공보다 실패의 위험이 크다고 본다. 소득정책 그 자제가 암묵적으로 수반하는 정책적 기회비용의 크기가 소득정책 효과의 크기보다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분배개선을 위한 소득정책이 성장정책과 직접 상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이 필수적이지만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경제정책은 구조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즉 소득정책은 구조개혁 정책의 기대효과를 기회비용으로 치루고 있다.
둘째, 소득정책 프레임을 통해 정부가 가계와 기업에 주는 신호는 가계와 기업의 행동 변화를 통해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경제성장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소득주도정책이 고용과 기업의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특히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노동지침의 폐기는 기업의 노동비용 부담을 높이고 고용의 경직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고용주들이 고용을 기피할 유인이 증대하는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이다. 양질의 일자리 증대는 문재인정부 소득정책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일자리 증대를 촉진하기보다 일자리 위축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소득정책 추진은 예상되는 효과는 매력적이지만, 복용 후 부작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약을 먹는 것과 같다. 부작용을 잘 알지 못하는 약은 조심스럽게 먹는 것이 답이다. 즉 양극화와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보정적 정책으로서 소득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고 타당하다.
그러나 지속성장 정책의 프레임으로 소득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혁신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는 정도를 넘어 혁신의 생태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소득주도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범위와 정도를 한정해 혁신주도 시스템이 작용할 유인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국 경제는 지금 인구만 고령화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구조 자체가 조로화해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성장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개혁이 절실하고, 혁신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통한 경제 체질 강화가 필요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9월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미래성장 경제정책 포럼 조찬세미나’에 참석해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