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왼쪽)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재벌개혁의 핵심인 지배구조 개혁이 본격화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5대그룹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공익재단과 지주회사 수익구조 전수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영권 승계와 함께 총수일가의 돈줄로 이용되던 수단들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재단 소유 지분 매각 등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5대그룹은 지난 6월 1차 면담 이후 일자리 창출과 협력사 상생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앞으로도 2·3차 협력사에 대한 무이자 대금 지원과 임금·복지 정책 등을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그룹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내부거래위원회나 투명경영위원회 등 글로벌 기준에 맞는 나름의 개선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각차도 존재했다. 김 위원장은 지배구조 측면에서 재계의 소극적 자세를 지적하며, 보다 세밀하고 속도감 있는 진행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신설된 기업집단국을 통해 개혁 과제를 제시해 압박했다. 기업집단국은 공익재단 운영 실태와 지주회사 수익구조를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조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 포착해 엄중 제재를 하는 것은 물론, 합리적 제도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공익재단의 의결권 제한 법안 등 정기국회 진행 상황과 보조를 맞춰 실질적인 지배구조 규제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공익법인은 공익목적 사업을 수행하며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받지만, 이를 악용해 재벌 총수가 후세에 증여세 없이 계열사 지분을 물려주는 사례가 빈번했다. 법 규제를 개정했지만 여전히 비과세 한도(5%, 성실공익법인 10%)의 존재로 논란의 불씨는 살아 있다. 재계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공익사업에 활용한다는 입장이나, 실제 지분 변동이나 매각 사례는 드물었다.
삼성의 경우 삼성문화·삼성복지·삼성생명공익 3개 재단이 삼성전자 등 핵심 상장사 지분을 3조원가량 갖고 있다. 대기업집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의결권이 제한되면 다른 지배력 강화 수단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현대차, LG, 롯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며 SK가 그나마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비과세 한도 여유가 있는 공익법인은 3·4세 승계 시기와 맞물려 향후 편법승계에 악용될 것이란 의심도 사고 있다. 삼성의 경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다뤄지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오르고 재단이 합병된 삼성물산 지분을 인수하면서 편법상속 논란이 일었다.
지주사 문제도 녹록치 않다. 비교적 투명한 지배구조로 평가받지만, 앞선 공정위의 브랜드 수수료 조사에서 SK와 LG 등이 다소 높게 설정됐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재벌 총수는 지주회사에 대한 소수 지분으로도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각종 컨설팅 수수료나 임대료 등을 과도하게 챙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위 관계자는 “배당은 일감몰아주기로 보기 어렵지만 브랜드 수수료나 임대 수익은 내부거래로 본다”며 “배당수익이 높은 지주회사라도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추가적으로 당부한 로비스트 규정 및 스튜어드십코드 준수나 노사정 관계 개선은 원론적인 수준이었지만, 하도급 거래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거래시 상생협력 증대에 기여한 임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분쟁을 일으킨 경우 패널티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규제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5대그룹이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압박했다. 5대그룹은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전수조사는 당장 내달부터 진행된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