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사정당국의 칼날이 금융권을 향하면서 시중은행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카드를 꺼낸 가운데 금융권의 특혜 채용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한편 은행 경영진과 노동조합과의 갈등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불거지며 최고경영자(CEO)의 앞날도 풍전등화로 변했기 때문이다.
(왼쪽 부터) 김용환 농협금융회장, 이병삼 전 국장, 윤종규 KB금융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박인규 DGB금융회장. 사진 /뉴스토마토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3일 밤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병삼 전 금감원 부원장보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금감원 채용비리 수사가 시작된 이래 구속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부원장보는 총무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상반기 민원처리 전문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금감원 출신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서류 조작을 지시하는 등 업무방해와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감사원으로부터 서태종 전 수석부원장과 이 전 부원장보, 이 모 전 총무국장에 대한 채용비리 관련 수사 의뢰를 받았으며, 9월22일 금감원을 압수수색했다.
사정당국의 수사는 금융권 전방위적으로 퍼지는 모습이다.
현재 검찰은 금감원 채용 비리와 관련해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집무실과 자택, 김성택 수출입은행 부행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관련 혐의점을 수사중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금감원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 김 부행장의 아들이 필기시험에 합격하도록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008년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지낸 김 회장은 2011년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했으며 당시 김 부행장은 비서실장을 맡았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금융권 채용비리는 최고경영자의 옷도 벗겼다.
지난 2일 이광구
우리은행(000030)(000030)장은 2016년 신입행원 공개채용 과정에서 제기된 특혜채용 비리 논란을 책임지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당초 이 행장은 특혜 채용 추천 명단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 감찰결과를 검찰에 통보하는 등 사안이 확대되자 용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남기명 국내 부문장(부행장)과 검사실장·영업본부장 등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된 내부 인사들도 직위 해제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이 최근의 상황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면서 우리은행 경영의 신속한 정상화를 바라고, 검찰 조사 진행시 성실히 임한다는 생각에서 사임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융권이 수사당국의 칼날에 떨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노사 갈등도 수사당국의 심판에 올랐다.
이는 지난 9월 KB금융 노동조합협의회가 실시한 윤종규 회장 연임 찬반 설문조사 당시 경영진이 개입했다는 조작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이날 경찰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디지털 자료를 확보했으며, 압수한 자료를 토대로 혐의를 살펴볼 계획이다.
이밖에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투자, 하나카드 등
하나금융지주(086790) 산하 3개 노조는 경영진 퇴진을 촉구하며 법률적 방안을 비롯한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은행은 개인의 사유물이 돼선 안된다”며 “최순실 금고지기 이상화 본부장을 특혜 승진시키는 등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한편 금융당국은 이번주부터 금융권 채용비리를 전담하는 창구를 만들어 신고를 접수받을 계획이다. 또 14개 국내은행의 채용추천제도도 집중 점검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로 조직이 흔들리는 데 우려를 표하면서도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 한 관계자는 “채용비리로 행내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해졌다”며 “서로 눈치를 보고 말을 조심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공적 업무나 공적인 일에 있어 더더욱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를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음서제도는 교묘하고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며 "채용비리는 사회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절망을 준다는 차원에서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 대표는 "감시와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와 포상제도를 강력히 시행해야 한다"면서 “이번 채용비리와 관련해 금융회사를 전면 감사해 그 실태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역시 "이번 채용비리의 몸통은 금감원으로, 금감원이 의지를 가지고 조사하지 않는다면 솜방망이 처벌을 넘어 빙산의 일각만 드러나는 꼴"이라며 "검찰 또한 적극적이고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