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원하는 게 있으면 경계를 넘어서라"

파트리시아 시니어 건축디자이너 이희진씨,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첫 데뷔

입력 : 2017-12-11 오전 9:05:00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코엑스몰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국 여성이 있다. 이희진 시니어 건축디자이너다. 이 디자이너는 2008년 홍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전시 전문업체 시공테크에서 일하다가 대학 졸업 6년만에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에는 이탈리아 대표 디자인 업체인 파트리시아 스튜디오에서 시니어 건축디자이너가 됐다. 한국인 최초 정직원이자 시니어다. 그만큼 쉽지 않았다. 스튜디오의 사장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는 디자인계의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릴만큼 유럽과 이탈리아에서 영향력이 크다. 우르퀴올라 사장이 그를 시니어로 채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니어 디자이너로서는 첫 무대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그를 만났다.(편집자주)
 
7일 서울 코엑스에서 2017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개막했다. 1코노미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는 네이버, 아우디, 멜론, 배달의민족 등 216개 브랜드와 네빌 브로디, 조 나가사카, 사토 타쿠, 린든 네리, 리네 크리스챤센, 네이버 김승언 이사, 우아한형제들 한명수 이사 등 515명의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가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홍대 학사 졸업 후 6년 뒤에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에 석사 입학했다. 결심한 이유는.
  
어느 날 인테리아 디자이너로서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떠났다. 시공테크는 정부나 지자체가 박물관 내지 기념관 등을 세울 때 전시 스타일을 만들며, 저도 서울시청 시민청 디자인에 관여했다. 공공기관의 요구에 맞춰 일하는 틀과 회사원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국 풍토에서는 독자적인 디자인을 구현하기 힘들어서다. 밀라노는 이벤트·전시가 많이 열리고 디자인 역사가 깊고 값어치가 높아서 디자이너에게 좋은 곳이다. 밀라노에 있는 도무스 아카데미는 실무 위주의 학교로 현지 업체와 1년에 4번 정도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파트리시아 스튜디오의 첫 한국인 정직원이다.
  
원래 도무스 아카데미 졸업 후 D&L이라는 스튜디오에서 1년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그냥 떠나기 아쉬워 평소 마음에 들었던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의 디자인 업체를 노크하기로 했다. 인간 관계를 잘 맺어놓았던 D&L 보스에게 인터뷰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에서는 “당신의 작품을 너무 사랑하고 팬이다. 돈 안 받아도 좋고 인턴 3개월 하고 짤려도 좋으니 밑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막상 입사하고 나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인턴 2개월 만에 정식 계약을 맺었다. 사실, 면접 시점에 강남 신세계 백화점 프로젝트가 들어와 있었고, 그 점이 입사에도, 회사에서의 직위에도 좋게 작용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지만, 파트리시아에서는 신세계 백화점 프로젝트의 메인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7년 경력을 모두 인정받아 보스 다음인 시니어 디자이너가 됐다. 다만 이탈리아는 위계가 중요하지 않지 않고 위계 따지는 게 촌스럽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편집자 주 : 실제로 이희진씨는 인터뷰 내내 회사 사장인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를 여자, 파트리시아, 디자이너로 불렀으며 높임말도 쓰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인종 차별 등 삶에 지장은 없나.
 
이탈리아 남자가 한국 여자 얼마나 좋아하는데.(웃음)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사람은 정이 많다. 진심으로 대하면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한다. 친해지기도 쉽고 친해지면 도움을 많이 받는다. 서비스가 느려서 불편한 점은 있다. 카드 만들려면 6개월, 거주 신청서 처리가 5~6개월 걸리는 식이다. 그래도 덕분에 느긋해지기도 했거니와, 디자인 업계에서 느린 절차는 장점이 더 많다. 하나라도 꼼꼼히 더 살펴보고 클라이언트와 상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클라이언트가 한국인인 경우면 문제다. 그리고 이탈리아어가 능숙하지 않아 고생했지만 나름대로 극복하는 법을 찾았다. 현지 클라이언트와 함께 하는 회의를 열면 스케치와 이미지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준비한다. 덕분에 회사 안에서 스케치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작품 ‘가상본질에 의한 기본’을 설명해달라.
 
우선 HI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말하겠다. 제 이름의 ‘H’를 파트리시아의 직장 동료인 일랴 체이노프스키의 ‘I’를 땄다. 회사가 아닌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만든 듀오 모임이다. 그리고 HI는 가상본질(Hypothetical Identity)이라는 뜻도 있다. 세상의 본질을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다. 이번 출품작도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방을 가상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크기가 작아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제 이름으로 스튜디오를 세우기 위해 이름을 알리는 첫 번째 시도다.
 
 
같은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정말 원하는 게 있으면 편한 곳으로부터 한 번쯤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살던 생활의 경계를 넘어가면, 그것이 또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전 이제 파트리시아도 너무 편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휴가까지 내서 다음 도전인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도전을 할 때 너무 완벽한 틀을 세팅해서 임하지 않아도 된다. 저도 스튜디오를 어느 나라에 차릴지, 언제 차릴지 아직 모른다. 내후년에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최대한 많이 이름을 알리는 정도만 계획하고 있다. 원래 내년이었으나, 회사로 들어온 프로젝트가 너무 좋아 남편과 이야기해 1년 더 미뤘다. 남편이 이해해주고 “네가 원하는 만큼 있어라”라고 말하며 확실하게 서포트해준다. 결혼을 잘한 것 같다.
 
이탈리아 디자인 업체 파트리시아 스튜디오의 이희진 시니어 건축디자이너가 지난 8일 본인 출품작 내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강남 코엑스몰에서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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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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