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전문가들은 생활임금과 최저임금 모두 '1만원 시대'를 맞더라도 생활임금이 최저임금의 보조적 견인차 역할이 아닌 독자적인 새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활임금제의 역사적 배경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생활임금이 영국이나 미국·캐나다·호주 등 영미권을 중심으로 도입된 것은 당시 영미권 국가들이 서양 국가들 가운데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불평등하고 복지 역시 낙후된 데다가 산별노조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저임금·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할 효과적 정책으로 생활임금제도가 고안됐다는 설명이다. 정경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도 소득 불평등, 미약한 복지, 약한 산별노조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할 장치로서 생활임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임금에게 기대 되는 새 역할로는 소득 최저선 설정, 양극화 해소, 소득 주도 성장 등이 꼽힌다. 최저임금과는 달리 지역별 물가나 생활비를 반영하고, 가족의 생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본질적 특징에 기인한다.
최저임금은 근로자 당사자 1인이 받는 최저금액이며 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이에 대해 그동안 경영계와 노동계 양측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저임금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해, 물가나 생활비가 낮은 지역은 최저임금을 적게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근로자 1인이 아닌 가구 생계비 기준으로 책정해 더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생활임금은 양자의 주장을 모두 포괄하는 소득 최저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물가와 생활비를 반영해 임금수준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와 전북도처럼 생활임금을 3인 가족 기준으로 책정하면 한 가정이 어느 정도 살아갈만한 금액이 정해진다. 광역자치단체뿐 아니라 기초자치단체들도 연이어 생활임금을 도입하고 있어 앞으로 소득 최저선은 더 세분화될 수 있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소득 최저선이 정착 단계에 이르면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늘어 양극화가 해소되고, 소비 여력이 생겨 소득 주도 성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공기관을 넘어서는 민간 확산도 생활임금제도가 찾아야 할 새로운 역할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5년까지는 직접고용 인력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2016년부터는 서울시와 계약 관계에 있는 민간 업체들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위탁·용역업체에 적용 중이며, 서울시의 보조금을 받는 보조사업자, 서울시가 발주한 사회기반시설을 짓는 사업시행자 등으로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이는 민간업체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어, 범위 확대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법안으로, 박완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 개정안과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계류 중이다. 각 의원실은 정규직화, 최저임금 문제 등 다른 노동 현안이 마무리 되는대로 이들 개정안의 입법절차를 서두를 계획이다.
법제화가 마무리 되더라도 민간 도입 범위를 더 넓히는 과제가 남아있다. 서울시는 대학·언론사 등 공공성이 강한 민간부문 강소기업과 생활임금제 도입 MOU를 맺거나 기업 인증제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국은 인증제 이후 생활임금 도입 기업이 2012년 78개에서 올해 무려 3500개로 늘어났다.
앞으로 법정 최저임금이 더 상승하면 생활임금의 민간 확산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얼마 안 되는 차액을 일종의 또 다른 홍보비용으로 넘겨 생활임금제를 도입하고 이미지 개선을 시도할 여지가 생긴다. 최봉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과 밀접한 유통업이나 삼성 등의 대기업이 생활임금을 도입하면 사회적 상징성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월1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생활임금의 날'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빗자루 탄 환경미화원 인형. 사진/박원순 서울시장 트위터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