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시민들의 ‘살만한 삶’을 보장하는 생활임금이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지만, 분기점이라 할만한 1만원 시대 이후에 대한 대비는 미흡한 상황이다. 새로운 역할과 장기적인 로드맵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자칫 최저임금에 흡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12곳 도입
2013년 기초 지자체에서 태동한 생활임금은 2015년 서울시에서 처음 시행한 이래 급속도로 확산되며 현재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가운데 12곳에 도입됐다. 영남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광역 지자체가 동참했다.
책정하는 생활임금 수준도 올라가고 있다. 내년 생활임금(시급)은 전남이 9370원, 서울 9211원, 대전 9036원 순이다. 세종이 7920원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생활임금이 6880원으로 가장 낮았던 인천도 내년 생활임금을 8600원으로 책정하며 무려 1720원, 25%를 인상했다.
현재의 생활임금은 공공부문 근로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전국 기초 지자체까지 합쳐 올해에만 3만1260명이 생활임금 혜택을 받았다. 이는 2015년 말 6591명에 비해 약 5배 가량 늘어난 수치로 생활임금이 얼마나 빠르게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최봉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생활임금 시행으로 인해 각 지자체가 투입하는 예산은 이전 급여와의 차액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도입 초기에는 지자체장의 선심성, 홍보용 등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수혜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공언한 ‘1만원시대’ 눈앞
서울시는 내후년인 2019년 생활임금을 1만원을 넘겨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상위권에 접어든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시기에 1만원을 넘겨 본격적인 생활임금 1만원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생활임금 1만원 시대는 각 지자체에서 생활임금 도입 당시 내세운 상징적 목표로, 생활임금이 1만원을 돌파하면 고용안정성 확보와 노동취약계층 보호라는 가치를 일차적으로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최 연구위원은 1만원 시대의 의미에 대해 “임금수준이 시급 1만원 정도는 돼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라는 취지 달성에 근접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활임금의 부수적 효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저조하던 최저임금 인상을 대신해 보완재 역할을 맡아 최저임금 인상의 견인차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12.3%의 인상률을 보이던 최저임금은 이명박 정부 때 2.75~8.3%, 박근혜 정부 시기에 6.1~8.1% 인상되는데 그쳤다. 이 때 도입된 생활임금은 저임금 노동자 보호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역시 가파른 인상세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시, 장기적 지속 대책 부족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작 각 지자체가 생활임금 1만원 시대 이후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최저임금 생활임금에 앞장 선 서울시조차 생활임금 산정에 사용되는 빈곤기준선을 내년 55%에서 향후 60%로 높이겠다는 계획 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 실정이다. 반면, 내년 최저임금은 16.4% 인상되면서 이미 생활임금과의 격차를 줄였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예고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1만원 시대 달성으로 생활임금이 다음 역할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최저임금에 따라잡힐 경우 그대로 흡수되거나 폐지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희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대상과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활임금은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최저임금이 생활임금 수준을 넘으면 생활임금이 최저임금으로 흡수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노총 최저임금 투쟁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