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1월2일 '5대그룹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재벌에게 주어진 '자체개혁' 시한이 임박했다. 삼성이나 현대차가 아직 움직임이 없어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을 자아낸다. 반면 한진, 한화, LG에 이어 CJ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무거운 짐을 덜고 여유를 찾았다. SK는 전자투표제를 도입,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재벌개혁의 모범이 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제시한 연말 데드라인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며 거듭 재촉했던 그였다. 특히 압박은 현대차를 향한다.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김 위원장의 질타에도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미동조차 없다. 연내 순환출자 등 굵직한 해법까진 아니더라도 주주환원정책 등 불끄기용 방편은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정의선 부회장 중심의 세대교체를 단행, 지배구조 변화 시그널을 줄 수도 있다. 삼성도 협력사 지원 확대 등 동반성장 노력은 있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선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이사회 체제를 강화해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업지원TF 신설 등 컨트롤타워 부재의 대책은 마련됐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선까지 이어지기는 힘들었다는 평가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뜨거웠던 재벌개혁 분위기와 비교하면 최근 기류는 다소 소강 상태다. 올해 마지막 임시국회조차 여야간 정쟁으로 재벌개혁 입법이 무산됐다. 이를 의식한 듯 공정위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를 정조준하고 나섰으며, 자산 5조~10조원 기업집단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시켰다. 또 규제 과세대상 매출액을 확대(교차·삼각거래 적용)하고, 일정 규모 초과시 증여의제를 적용해 지배주주 일가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나아가 대기업집단 계열 분리시 3년간 거래내역을 제출토록 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일감몰아주기 지분 규제 강화 이전에 회피용 계열분리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난제를 떠안은 삼성, 현대차와 달리 문제풀이가 쉬운 집단에선 사정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유니컨버스를 흡수합병한 한진, 한화S&C를 분할한 한화에 이어 LG가 지주회사 체제 밖 LG상사의 총수일가 지분을 사들여 일감몰아주기 이슈를 해소했다. CJ도 대열에 합류했다. 19일 CJ-CJ제일제당-CJ대한통운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단순화 작업을 발표했다. 내부거래 비율 30%가 넘는 CJ건설을 CJ대한통운이 흡수합병키로 해 일감 논란의 소지도 제거했다. 손자회사 공동 지배구조 불허, 손자회사 지분율 강화 등 공정거래법 개정 리스크를 줄였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밖에 SK는 상법 개정의 쟁점 중 하나인 전자투표제를 도입키로 해 의사결정구조 개선의 모범 사례를 선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