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경제검찰’의 자발적 개혁 요구에도 재벌의 지배구조 지표는 제자리 걸음이다. 총수일가가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는 여전했다. 연말까지 개혁 의지를 보여 달라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5대그룹은 미동이 없다. 공정위는 30일 기업집단국을 앞세워 지지부진한 지배구조 개선 현황을 공개하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기업집단국이 이날 발표한 ‘2017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상위 10대그룹의 계열사 전체 자본금 대비 총수일가 지분율은 평균 2.5%에 불과했다. 특히 일부 그룹은 계열사 전체 자본금 대비 총수일가 지분이 1% 미만으로, SK가 0.32%, 금호아시아나 0.33%, 현대중공업 0.89%, 하림 0.90%, 삼성 0.99% 등으로 나타났다. 총수로 좁히면 지분율은 2014년 이후 1% 미만이다. 올해도 0.9%에 그쳤다. 이처럼 총수가 극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현상이 정부가 개혁 1순위로 지목하는 재벌 문제의 핵심이다.
총수일가 지분율은 2007년 이후 계속 감소했으나 그룹 전체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오히려 늘었다.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45개 집단)의 내부지분율은 58%로 전년보다 0.7%포인트 증가했다. 계열사들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투자해 지분율을 늘린 영향이 컸다. '내부지분율'은 계열사 전체 자본금 중 동일인 및 동일인관련자(친족, 임원, 계열사, 비영리법인 등)가 보유한 주식가액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특히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은 1998년 45.1%에서 올해 58.3%까지 꾸준히 오름세다.
이처럼 총수일가 지분율과 내부지분율이 크게 상이하는 문제는 내부출자에서 비롯됐다. 총수가 소수 지분을 가진 회사가 다른 회사에 출자하고, 그 기업이 다시 계열기업을 늘리는 방식이다. 비교적 선진 지배구조로 인식되는 지주회사 체제 역시 내부출자로 계열사를 늘리기에 유용한 제도라는 지적이 있다. 최근 지주회사의 계열사 지분 확대가 골자인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가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1차 타깃은 순환출자 집단이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문제는 순환출자 등 복잡한 구조를 통해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화살은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과 현대차를 향한다. 순환출자 고리가 많은 집단은 올해 신규 지정된 SM(148개)을 비롯해 롯데(67개), 삼성·영풍(7개), 현대자동차·현대산업개발(4개) 순이다. 삼성, 현대차 등은 지난해와 고리 수에 변동이 없었다. 이들 집단은 순환출자 고리 내 해당 집단의 주력 계열사들이 포함돼 있어 순환출자가 지배구조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 등의 출자고리가 대표적이다.
앞서 김상조 위원장은 5대그룹 면담 당시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문제는 단기간에 풀기 어려운 과제”라며 “연말까지 변화하겠다는 의지만 보여주면 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대상으로 지목된 재벌들의 관련 시도는 아직 포착되지 않는다. 5대그룹 면담 후 LG가 지주사 체제 밖의 총수일가 회사 문제를 해결하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협력사에 대한 성과공유제를 솔선하는 등 일부 노력도 있었지만, 지배구조 핵심 현안과는 거리가 멀다.
공정위는 당장 내달부터 대기업집단의 공익법인 운영실태와 지주회사 수익구조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며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공익법인은 내부 지분에 참여해 총수일가의 지배력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문제 삼는다. 지주회사에 대한 조사는 행위제한 규제의 정책 근거를 마련하는 쪽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또한 금융위원회와 협력해 대기업집단이 금융자본으로 내부지분율을 높이는 문제도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