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용품 업계 '전문경영인' 전성시대

락앤락·해피콜, 승계 대신 매각…네오플램·테팔, 8년 장기 경영

입력 : 2017-12-20 오후 3:39:55
[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국내 주방용품 업계에 전문경영인 바람이 거세다. 창업주가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일군 기업을 2세에게 승계하기보다는, 지분 매각 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지분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을 피하는 동시에 역량이 검증된 경영인을 영입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20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락앤락(115390)은 이달 초 주주총회를 통해 김성훈 전 삼성SDS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향후 1년 동안 창업주 김준일 회장이 공동대표로 김성훈 체제가 제대로 자리 잡도록 돕는다는 계획이다.
 
락앤락은 김준일 회장이 27세 청년이던 지난 1978년 설립한 '국진유통'부터 시작됐다. 김 회장은 40년 가까이 회사를 경영하며 회사를 국내 1위 밀폐용기 기업으로 키워냈다. 현재 이 회사는 밀폐용기뿐 아니라 프라이팬, 냄비 등 주방용품 일체를 취급하는 종합주방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부침을 겪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중국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다. 실적은 지난 2012년 매출액 5084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중국 사업 일부 구조조정과 온라인 매출 증가 등으로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4.4% 증가한 425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298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051억원)대비 소폭 감소했다.
 
지난 8월 락앤락을 인수한 사모펀드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회사 체질 개선을 주도할 적임자로 김성훈 대표를 선택했다. 1983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에 입사한 김 대표는 삼성SDS에서 전략마케팅실장, 컨설팅센터장 등을 거친 브랜딩 전문가로 꼽힌다. 정체된 국내시장은 물론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락앤락을 만들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김 대표는 지난 취임사에서 "40여년간 회사를 성장시켜 온 창업주와 임직원, 장기적 파트너십을 중시하는 글로벌 투자자와 함께 락앤락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 가장 락앤락다운 회사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내부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락앤락 관계자는 "대표께서 취임 이후 각 부서마다 따로 미팅을 갖으며 임직원들과 소통을 늘려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조직개편 등 가시적인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임대표 영입은 어피너티에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에서는 새로운 대표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주방용품기업 해피콜이 사모펀드에 매각된 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경남 김해에 본사와 공장을 둔 향토기업인 이 회사의 창업주 이현삼 전 회장은 회사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해 2세 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택했다. 지난해 9월 김영훈 전 동양매직(현 SK매직) 사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해피콜은 지난해 매출액 1749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돌풍에 비해 해외시장에서의 성과는 미미하다. 회사는 최근 '해피콜 키친 갤러리'를 오픈해 국내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프리미엄 브랜드 '메쏘' 등을 새롭게 론칭하며 해외시장을 공략할 제품 라인업도 강화했다. 김영훈 체제 1년 만에 대대적인 브랜드 재정립 작업을 벌인 것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오랫동안 이어온 주방용품 기업들도 눈에 띈다. 네오플램은 일찌감치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사세를 키웠다. 회계사 출신인 박창수 대표는 2010년부터 8년째 이 회사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던 세라믹 코팅 프라이팬과 냄비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회사를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난 2014년 강원도 원주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해 경영 효율성을 높인 것도 그의 성과로 꼽힌다. 다만 최근 들어 세라믹 코팅 제품의 인기가 시들해지며 실적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박 대표의 능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테팔 브랜드로 알려진 그룹세브코리아의 팽경인 대표 역시 성공한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지난 1997년 한국법인 설립 후 줄곧 본사에서 파견한 외국인이 대표를 맡았다. 그러다 2009년 7월 팽 대표가 최초의 한국인 대표이사로 선임돼 현재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에 오른 그는 그룹세브의 생활가전 브랜드 등을 한데모아 '테팔' 브랜드로 통합해 시너지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한회사인 그룹세브코리아는 매출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2000억원대 중반 이상의 연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팽 대표 취임 당시 이 회사의 매출액은 1000억원 초반대에 불과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와 달리) 전문경영인은 기업을 소유가 아니라 온전히 경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형 신사업 추진 등,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성훈 락앤락 대표, 김영훈 해피콜 대표, 박창수 네오플램 대표, 팽경인 그룹세브코리아 대표(왼쪽부터). 사진/각사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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