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재벌개혁이 활시위를 떠났다. 주요 그룹과의 면담 등 허니문 기간을 통해 올해 강력한 실행을 위한 명분도 축적했다. '김상조식' 표현대로 재벌개혁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순차적이고 체계적인 단계를 밟아가는 중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이를 지지하는 국민여론이 확인되면서 자발적인 개혁 움직임도 잇달았다. 지주회사 행위제한, 금융그룹 통합감독 등 시운전을 끝낸 재벌개혁 시스템도 예고된 상태다. '황제경영' 폐단을 겨냥한 화살이 과녁에 성큼 다가섰다.
상법 개정안, 재벌개혁 바로미터
문재인정부의 경제민주화, 그중에서도 재벌개혁 공약은 ▲총수일가 전횡 및 편법적 지배력 방지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기술탈취 규제 강화 ▲금산분리 원칙 준수 등으로 압축된다. 총수일가에 대한 규제는 재벌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다. 쟁점 법안인 상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재계는 상법 개정에 결사 반대다. 야당 반대도 만만치 않다. 팽팽했던 전선은 SK가 허물었다. 섀도보팅 일몰에 따른 부담을 상법 개정의 하나인 전자투표제 도입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재계의 반대 명분이 약화되면서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다른 쟁점 법안들도 성큼 현실로 다가섰다.
지주사 행위제한으로 재벌 기형적 구조 철퇴
상법 개정이 예고편이라면 본편은 지주회사 행위제한이다. 지주사가 보유한 계열사의 주식가치를 공정가치로 평가토록 하고, 지배기업의 총자산 대비 주식가액이 50%를 넘으면 지주사 체제로 강제 전환토록 하며, 지주사의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율을 현행 상장 20%, 비상장 40% 이상에서 각각 30%, 50%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총수일가가 소수지분으로도 그룹 전체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형적 구조를 문제 삼았다. 삼성이나 현대차 등 지주사 미전환 그룹이나 SK와 LG, GS 등 기존 지주사 체제 모두 규제망에 걸린다. 입법이 현실화되면 대상 기업은 추가 지분 매입 등 후폭풍에 시달릴 전망이다. 정부는 이를 100대 국정과제로도 편성했다.
연장선에서 계열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인적분할시 자사주 의결권 제한 등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도 도마에 올랐다. 공익법인 관련해서는 공정위가 지난 연말부터 운영실태 조사에 들어가 압박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추후 조사자료는 입법 근거로도 활용되어진다. 자사주 규제는 여야 이견이 팽팽해 법안이 표류하는 사이, 다수의 재벌집단들이 지난해 인적분할을 마치며 막바지 수혜를 누렸다. 삼성전자와 SK케미칼 등 자발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해 이슈를 해소하는 전향적 변화도 있었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는 시장 충격이 클 것을 고려해 단계적 해소로 정책 방향이 맞춰졌다. 최근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신규 순환출자가 강화된 출자고리의 가이드라인을 수정, 문제되는 주식을 추가 매각토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를 올 3분기까지 매각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계기로 기존 순환출자 해소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촘촘해진 일감몰아주기 규제망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가장 빠른 진도를 보이고 있다. 공정위는 자산 5조~10조원 기업집단을 규제 대상에 새로 추가했고, 규제 대상의 거래 유형도 교차·삼각거래까지 확대했다. 또 계열분리된 회사에 기존 집단과의 거래내역을 3년간 제출토록 해 규제 회피 경로도 차단했다. 재계는 공정위가 만지작거리는 규제 대상 총수일가 지분요건(상장사 30%, 비상장사 20%) 강화 방안을 주목한다. 법 시행령 개정으로도 가능하며, 이와 별도로 관련 법안도 발의돼 있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개정 이전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기조가 형성된 것만으로도 효과가 나타났다. 한진, 한화, LG, CJ 등 다수의 그룹들이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를 스스로 정리해 이슈를 제거했다.
금산분리 압박 전방위로 확대
금산분리도 재계를 괴롭힌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이 새롭게 도입된다. 금융당국은 이달 안으로 시스템 도입 계획과 일정을 확정하고, 연내 관련 법제화까지 추진키로 했다. 제도는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동부, 태광 등 금산결합집단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특히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처럼 금융자본이 소유한 산업자본 규모가 클수록 리스크가 부각된다.
국회에는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 산정시 채권 및 주식 소유 합계액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를 기준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개정안은 자산운용비율 3% 초과 계열사 지분 보유분을 7년 이내 해소하도록 규정한다. 국회에는 또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지분 중 의결권 행사 범위를 3%로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계류 중이다. 이와 별도로 공정위는 의결권 제한 범위를 5%로 하는 입법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전방위 압박으로 금산결합 집단은 결속을 유지하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위가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고치는 등 국민들도 체감하는 부분이 있을 듯하다”며 “금융위도 개혁에 대한 저항감, 과거 개혁 반대방향으로 갔던 부담 등을 떨쳐내고 보다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모멘텀이 있어야 이해 당사자의 저항을 감수하고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며 “그 모멘텀이 있는 지금, 결기와 모험 등 더욱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