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가 보다.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들이 ‘칼퇴’와 잉여로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로봇 개는 등장하지 않았을 거다. 더 늦게 탄생했거나. 넉넉한 돈만큼이나 사람들의 삶의 질까지 넉넉했다면 로봇 개는 그렇게 불티나게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주거 구조가 반려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면? 로봇 개가 아니라 로봇 고양이가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필요조건이 로봇 개를 만들었다. 1999년 소니의 ‘아이보(AIBO)’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 봐야 장난감 로봇 아냐? 그럴까? 첫 일본 판매분 3000대(마리)는 20분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 장난감이나 전자제품이 아니라 애완동물 코너에서 판매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부품 단종으로 아이보를 고칠 수 없게 되자 장례식을 치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장기이식처럼 자신의 아이보 부품을 다른 아이보에게 떼어주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개를 닮은 로봇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로봇을 닮은 개였다. 아이보가 최근 단종 12년 만에 부활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AI)까지 장착했다. 훨씬 더 똑똑해지고 움직임도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충분조건까지 갖춘 셈이다.
2016년 초 동영상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진짜 개와 로봇 개가 조우하는 장면이다. 동영상에서 로봇 개에 놀란 진짜 개는 연신 따라다니며 짖는다. 진짜 개는 당시 구글에서 로봇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앤디 루빈의 애완견 코스모였다. 로봇 개는 당시 구글의 소유였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스팟(Spot)’이었다. 동영상에는 또 엔지니어가 스팟을 발로 차는 장면이 나온다.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연출했는데 이 장면이 그만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아무리 로봇 개라지만 그렇게 무자비하게 발로 찰 수 있느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로봇인데도 동물 학대 장면을 볼 때와 비슷한 정서를 느낀 거다.
우주에 첫발을 내디딘 지구 생명체는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1957년 11월 3일 옛 소련은 두 번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한다. 1호처럼 특별한 기능 없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신호를 지구로 보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위성에는 특별한 손님이 탑승했다. 우주로 나간 첫 지구 생명체 ‘라이카’였다. 라이카는 떠돌이 암컷이었다. 생존력과 환경 적응력을 고려한 옛 소련 과학자들의 선택이었다. 당시 소련은 주사약이 자동으로 주입되는 장치를 통해 발사 일주일 후 라이카가 안락사했다고 발표했다. 거짓말이었다. 이후 공개된 옛 소련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라이카는 발사 7시간 만에 사망했다. 소음과 진동, 급격한 온도변화에 따른 쇼크사였다.
지구궤도 비행도 사람보다 개가 먼저였다. 1960년 8월 19일 발사된 스푸트니크 5호에는 벨카와 스트렐카라는 두 마리의 개가 탑승했다. 벨카와 스트렐카는 발사 하루 만에 지구궤도를 17바퀴 여행한 뒤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우주로 나간 생명체의 지구 귀환 가능성을 입증했고, 8개월 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다. 벨카와 스트렐카는 인기도 얻는다. 이들 스페이스 독(Space dog)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벨카와 스트렐카가 착용했던 우주복은 2014년 독일 베를린의 경매장에서 1만 8,000달러에 팔렸다.
20세기 초 생리학자인 파블로프는 개가 먹이를 먹을 때마다 분비되는 침의 양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먹이를 주지 않아도 발소리를 듣거나 빈 밥그릇만 봐도 침을 분비한다는 사실이었다. 발소리와 밥그릇이 먹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다. 유명한 ‘파블로프의 실험’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이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고 학습하는지를 규명한 역사적 연구였다.
개는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다. 개와 함께 한 과학의 역사를 보면 특히 그렇다.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라 과학기술 진보의 역사도 함께했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 개띠라고 한다.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 점점 사람보다 개에게 더 수치스러운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다. 새해에는 최소한 개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지 않겠냐고.
너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 같아 범위를 좁혀야겠다. 부끄러움도 모른 채 끊임없이 적폐 청산을 방해하고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낡은 세력과 정치인들로 말이다. 저수지의 개들로 불러 무방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사람과 친해도 개가 사람 되긴 어렵다. 그런데 사람이 개 되는 건 순식간이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