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남녀 임금격차 해소, 시대적 사명

입력 : 2018-01-30 오전 6:00:00
누가 ‘만인은 평등하다’(Equality of all)고 했던가. 역사상 만인이 평등했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에게 소유란 개념이 생겨난 이후 평등한 세상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불평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부의 불평등, 권력의 불평등 등으로 다양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불평등은 남녀 간 성차별이다. 그 중에서도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남녀 간 임금격차다. 한국 사회를 보면 많은 대학의 수석 입학자와 졸업자는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는 남성을 선호하고 승진이나 임금 체계는 여성에게 한없이 불리하다.
 
김대중정부는 지난 2001년을 ‘남녀 평등사회 실현의 원년’으로 삼았으며 같은 해 7월3일 여성부는 <21세기 남녀평등헌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17년 간 한국 사회의 남녀평등은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남녀 임금을 비교해 보면 성차별 문제는 하나도 조정되지 않았다. 임금격차는 지난 2009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2016년 기준 37%였다. 남성 근로자 소득을 100이라고 했을 때 여성 근로자 소득이 37%나 적은 63에 그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심각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주제에 대해 담론조차 형성하지 않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초석을 다진 프랑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불평등이 산재해 있다. 일부 부유층이 전체 부의 90%를 독식하는 것은 다른 사회와 다를 바 없고, 남녀 간 임금격차 또한 크다. 다만 프랑스는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개시에 들어갔다는 차이가 있다. 뮈리엘 페니코(Muriel Penicaud) 노동부 장관은 프랑스 일요신문(Journal du dimanche)과의 인터뷰에서 직장에서의 평등을 위해 현행 남녀의 월급차이(9%)를 마크롱정부가 끝나는 2022년 5월까지 줄이기 위한 행동계획(Plan d‘action)을 발표했다.
 
이를 잘 발전시키기 위해 노사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성차별,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의 여론이 이 문제를 더 봐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페니코 장관은 지금부터 5년 안에 같은 위치에 있는 남녀의 임금격차를 없애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녀는 “여성과 경제 차원에서 부끄럽고 형편없는 이 문제를 이번 정부에서 해결해야만 한다”며 “효과적인 방법을 찾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사회적 담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니코 장관은 “남녀 간 평등은 헌법의 기본원칙이며 ‘평등에 관한 루디법’(loi Roudy·1983년 7월13일 제정)은 만들어진지 35년째”라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직장에서 남성과 같은 포지션인데도 봉급을 9% 적게 받고, 여러 직책을 섞어 평균을 내면 25% 적게 받는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페니코 장관은 이러한 임금격차는 어린 시절부터 굳어진 성차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과 남녀평등을 위한 정무차관 마를렌 시아파(Marlene Schiappa)와 연대해 이 9%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영국 BBC의 여기자 케리 그레시(Carrie Gracie)는 회사 내 남녀 임금격차에 대항하기 위해 사직을 결정했다. 그녀는 영국 대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러분은 BBC가 남녀평등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권리가 있고, 공정하고 투명한 급여체계를 만들도록 압력을 가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BBC의 여직원 중 3분의 1은 남성보다 훨씬 적은 봉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BBC의 최고경영자 토니 홀(Tony Hall)은 가능한 한 빨리 남녀 간 임금격차를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지금부터 2020년까지 이를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국가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남녀 임금평등의 실현을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도 세계의 흐름에 발맞춰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고 성차별을 없애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평등으로 가는 대원칙을 만드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런 본질적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한 채 ‘OECD 멤버로,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경제선진국 한국’만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대국이 될 수 없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구습을 타파해야만 한다. 문재인정부는 우리 사회에 놓여있는 불평등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먼저 남녀 간 임금격차부터 타파하라. 이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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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