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과제 중 하나인 국방개혁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조선 22대 왕 정조를 떠올린다. 정조의 국방개혁 의지는 강했다. 정조 즉위 당시 조선군은 5군영(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총융청·수어청) 체제였다. 이중 훈련도감을 제외한 4군영이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에 의해 설치된 터였다. 반정에 동원된 사병이 궁성수비·수도방어 병력으로 전환되니 군사력은 왕이 아닌, 집권세력(노론)이 지닐 수밖에 없었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책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군대 장용영’에서 “국왕을 지지하는 군사력이 없는 기묘한 정치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정조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성호 이익은 왕의 뜻을 충실히 수행할 친위군영 양성을 주장했다. 그는 “백성을 위해 국왕이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조는 즉위 후 이를 수용해 장용영을 창설했다. 운영과정도 과거와 달랐다. 김 교수는 “정조는 왕실 사적재산인 내탕전의 비용과 둔전으로 장용영을 운영하고 백성들에게는 요역과 부세를 감해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금난전권을 행사하는 시전상인들이 이들을 보호하는 각 군문세력과 결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백성들이 장사를 할 수 있는 ‘신해통공’ 정책을 폈다. 국방개혁 추진 과정에서 민생안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정조의 치세가 지금까지 계속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31일과 1일 연속으로 방산비리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174억원을 들여 2016년 진행한 대북확성기 전력화 사업 참여업체들이 35억원의 부당이득을 누린 것이 확인됐다.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 체계 개발과정에서도 일부 직원이 업체와 결탁하며 추가보상비가 지급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 세금은 또 낭비됐다. 알뜰하게 모아졌다면 다른 민생사업에 쓰여졌을 수도 있는 돈이다.
천궁사업 감사결과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처분요구를 존중하며 관련자 처벌과 제도보완을 통해 방위사업을 더 투명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솔직히 미덥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방사청은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국방획득분야의 전면적 개혁방안을 모색한 결과 방위력 개선사업, 군수품 조달 및 방위산업 육성사업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정부기구’로 소개한다. 방산비리를 막기 위해 설치된 기관에서 발생한 비리를 놓고 퇴직공직자 관리·유착근절 대책을 강화하고 비리 유형별 제재방안을 마련한다고 어느 정도의 효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제도상의 틈새는 언제든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발생한 비리에 대해 철퇴를 내리는 것이 현 시점에서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정조는 장용영 군사들 사이에서 폐단이 발생할 경우 인솔 관원을 파직시키기도 했으며 뇌물을 받지 말 것을 ‘융령’으로 규정해놓기도 했다. 잘못을 저지를 경우 똑같은 죄에 대한 형벌의 두 배 이상의 형벌을 줬다. 이유를 두고 김 교수는 “장용영 장졸들이 민폐를 끼치게 되면 정조의 허물로 공론화되고 국왕이 추진하고자 하는 군제개혁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 정부도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