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의 시장 안착이 차일피일 계속 미뤄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하반기에는 발행어음 사업 등 초대형 IB와 관련한 실질적인 영업활동을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투자증권만 지난달 말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았을 뿐 다른 4개(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KB증권·삼성증권) 증권사의 경우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미 연내 인가는 물 건너갔고 내년에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초대형 IB에 대한 혼선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 정책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얼마전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 발표한 권고 내용이 발표되자 증권가에서는 ‘초대형 IB가 출범도 하기 전에 발목부터 잡는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지난 20일 혁신위는 초대형 IB 규제 개선과 관련해 ‘신용공여 범위를 투자은행의 고유기능 또는 신생·혁신기업으로 제한하고, 건전성 규제와 투자자 보호를 일반 은행과 유사한 수준으로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당초 금융당국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한다면서 초대형 IB 방안을 적극 추진해왔다. 국내 증권업계가 여전히 중개업 위주의 영업에서 탈피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낮은 현실을 감안해 충분한 자본력을 토대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모험자본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IB의 역할이 절실하며, 장기적으로 증권업계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의 방침에 따라 인가기준을 맞추는 등 준비를 거쳐 실질적인 영업을 앞둔 시점에서 대주주 적격성 등의 사유로 인가작업이 늦어지는 것도 답답하다”면서 “초대형 IB가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규제부터 하려고 한다”고 항변했다.
당국이 추진한 방안을 신뢰해서 따라왔는데 지금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인가가 지연되고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업무영역을 축소시키려는 권고안이 나오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혁신위가 신용공여 범위를 보수적으로 규정한 것은 그동안 초대형 IB 업무 범위를 두고 대립해온 은행 업권의 로비때문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원칙이 지켜질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초대형 IB를 둘러싼 혼선은 금융당국이 자초한 면이 많으며, 정권이 교체되고 금융당국의 수장이 바뀌면서 정책 스탠스가 달라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재홍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