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사이)검찰만의 문제인가

입력 : 2018-02-06 오전 6:00:00
지난 주 대한민국은 한 여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또 한 번 들썩였다. 이 여검사는 한 언론에 나와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안 모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그 후로 계속해서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방송이 나간 후 이 사건에 연루된 주인공들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순위 1·2위를 기록했고, 사건을 둘러싼 갑론을박으로 한국 사회는 야단법석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여검사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조사 의지를 내보였다. 문 총장은 성추행 의혹 대책을 묻는 기자들에게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고, 진상조사를 철저히 할 예정”이며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또 “직장 내 양성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조치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깨끗해야 할 검찰이 이렇게 엉망진창인줄 몰랐다’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같은 사건이 어디 검찰에서만 벌어지고 있을까. 이번 기회에 좀 더 냉철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엔 아동 성폭력과 학교 내 성폭력,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여학생 성희롱과 성추행 등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무수한 사건들이 뉴스를 도배했다. 그러나 그때는 왜 지금과 같은 사회 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여검사라는 타이틀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최고 엘리트를 상징한다. 그녀들은 이 타이틀만으로도 일정부분 보호받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집단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면 다른 집단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여검사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어떠한지 들여다봐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결코 검찰의 일로만 보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여성 전체의 일로 봐주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은 한국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 사회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통적 남존여비 사상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검찰 내 추악한 성추행 사건으로 끝내버릴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남녀불평등을 어떻게 줄여 나갈지 크게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어떤 사건이 생기면 여론이 끓어올라 이에 못 이겨 부랴부랴 일부만 땜질하는 식의 미봉책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50대 공약 중 ‘성희롱법’ 마련을 최우선 과제로 약속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당선 후 곧바로 성희롱법을 만들었다. 2017년 6월 엘리제궁의 새 주인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전임자의 정책기조를 이어받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법 제정 의지를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에 남녀평등 전담부서를 두고 정무 차관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정무 차관 마들렌 시아파(Marlene Shiappa)는 지난 주 RTL(Radio Tele Luxembourg)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법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녀는 올해 세계여성의 날(3월8일) 전날인 3월7일 국무회의에서 여성 폭력금지 법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에는 성폭력 공소시효 연장과 미성년자와 성인의 성관계 처벌 강화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거리에서 여성들을 귀찮게 구는 행동을 ‘성적 모욕’으로 명명하고, 발각되는 즉시 범칙금(90~750유로) 납부와 조서 작성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이는 여성을 모욕하거나 위협적인 성적 행동을 유발하는 자들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시아파 정무 차관은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파문과 성적 희생자에 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에서 약속한 남녀평등 실현은 그의 5년 임기동안 대의(Grande cause)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녀는 마크롱 대통령이 남녀 간 임금격차를 없애기 위해 기존에 제정된 법(루디 법)을 잘 적용하고 제재를 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가 남녀평등의 모범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많은 여성들을 고위직 공무원에 임명할 것도 제안했다.
 
시아파 정무 차관은 지난해 10월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과 함께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고 균등한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남녀평등 프랑스 일주(Tour de France de l‘Egalite entre les femmes et les hommes)>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프랑스 곳곳에 아틀리에를 설치하고 여성의 권리와 평등에 대한 전국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시아파 차관은 파리 7구(자신의 집무실)에서 여론을 듣는 것은 큰 한계가 있어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도 이번 여검사 성추행 사건을 권위적인 검찰 내부의 부패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남녀불평등이라는 대의로 규정하는 한편 이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혁신과제로 삼으라고 지시한 상태다. 그러나 지시만으로는 이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리사회의 악으로 굳어진 남녀불평등 문제를 타파하도록 진두지휘해야 한다. 당장 프랑스처럼 남녀평등 법을 만들고 여성이 인격적으로 대우받는 ‘탈 남성사회’로 나아가자.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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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