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전세를 살던 A씨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입주할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그는 전세 기간을 입주 시기에 맞췄다. 전세 보증금과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길 계획이었다.
A씨는 이사를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집주인에게 본인의 사정을 얘기하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입주 물량 과잉공급에 치솟은 전셋값 탓에 집을 구경 오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미 집주인은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통해 또 다른 아파트를 분양 받은 상황이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찾지 못할 경우 A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쉽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다.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집주인과 세입자간 ‘전세 보증금 반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하소연하는 글들이 부쩍 늘었다. 이는 지난해부터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잇따라 발표된 데다 입주물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집값하락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랜싱의 '주택순환과정'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주택 10가구가 증가하면 35가구가 이동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단순 적용하면 지난해 수도권 입주물량은 28만가구로 결국 98만가구가 이사를 가야 한다는 뜻이다. 주택공급이 확대되면 이사를 하는 가구가 비례해 증가한다. 시장의 순환이 원활치 않으면 더 많이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최근 ‘역전세난’이 현실화되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규제가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전세금 보증보험 가입자는 4만3818가구로 지난 2013년 451가구 대비 100배가량 가입자가 증가했다. 전세금 보증보험 가입금액 역시 지난해 9조4931억원으로 2013년 765억원과 비교해 무려 124배 이상 증가했다. 주택시장에서 세입자의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수도권과 지방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확대되면서 임대차 시장의 변화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주택 증가로 세입자 선택권 확대, 도심으로의 회귀, 재고가격 대비 높은 분양가, 시중은행 금리인상에 따른 금융부담 등을 고려할 때 수도권 외곽의 역전세난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시장의 불규칙한 주택 수급조절은 집주인도 세입자도 모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놀이터 시소와 같이 균형을 잡기가 상당히 어렵다. 전세시장은 본질적으로 사금융의 성격이 짙어 작은 수급의 변화에 요동을 치는 특성이 있다.
다시 말해 주택 매매시장보다 전세시장의 경제 메커니즘이 더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미치는 영향 역시 크다는 얘기다. 정부는 앞장서 역전세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임대차시장 변동완화 정책 등을 통해 시장 안정화에 나서야 한다. 이와 함께 전세제도 및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 지원도 다양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의무를 지켜야 하고,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거나, 보증금 반환 지연에 따른 추가 비용을 받는 등 유연한 접근방법을 통해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택 뉴스토마토 팀장